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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2012년 4월)

동물과 함께한 영국여행(1부 : Windermere of Lake District)

수의사 연중

 

동물과 함께한 영국여행

 

1부 : Windermere of Lake District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번 여행의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꼭 남기리라 생각해 왔으나 다시금 시작된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역시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쩌면 순간의 온전한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옮김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퇴색을 초래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그 망설임에 한 몫한 듯 합니다. 아무리 필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 순간의 격정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없으며, 아무리 좋은 사진기라도 그 순간의 햇살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애초 이번 여행의 주제는 동물로 점철됩니다. 처음 여행의 계획도 버밍햄에서의 영국소동물수의학회(BSAVA Congress) 참석을 위해 시작되었으며, 학회 전후 여행 기간 동안 제겐 유럽의 고풍스런 건물, 화려한 쇼핑보다는 유럽의 동물들, 유럽인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 유럽의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 등에 더욱 관심이 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어지는 제 글과 사진 또한 자연스레 동물 이야기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사진1. Bowness on Windermere

 

 

 맨체스터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마침내 Lake District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Lake District는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말 그대로 다양한 호수와 산악지형으로 이뤄진 곳입니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영국 전역에서는 두 번째로 큰 국립공원으로 영국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중 하나이지요. 영국 남쪽에서 Lake District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Windermere라는 마을을 통해야 합니다. 즉, Windermere가 Lake District 여행의 시작점인 것이죠. Windermere 역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Windermere 호수를 여행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은 마을, Bowness on Windermere로 향했습니다.

 

 

사진 2. Bowness on Windermere의 한 식료품 점 앞에서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

 

 

 Windermere 역에서 Bowness on Windermere까지는 도보로 한 30분은 족히 가야하나 주변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고 날씨도 선선히 전혀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특히 Bowness on Windermere로 향하는 길 주변에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전원주택이 즐비하였는데, '아, 이런 곳에서 살 수만 있다면 많은 동물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 놀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한 식료품 점 앞에 묶여 있는 반려견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주인을 애타게 찾거나 초조해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지요. 이렇게 상점 앞에 잠시 묶여 있는 반려견은 영국 전역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모두가 평안한 마음으로 보호자를 기다리는 듯 했습니다. 아니, 꼭 이처럼 묶여 있는 이들 뿐이 아니라 사실 영국의 모든 반려견이 참 신사처럼 느껴졌지요. 마치 인간 사회에서 자신들도 본성을 마음껏 뽐낼 기회를 가지고 있음을 대한민국에서 온 풋내기 수의사에게 과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제 말이 과장 같다고요? 겪어보지 않으면 전혀 모릅니다. 동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진 3. Bowness on Windermere의 한 가구점 앞에서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

 

 

 상점의 성격에 따라 반려견의 출입이 제한되야 하는 곳이 분명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가구점이나 옷가게의 경우 반려견이 고의든 실수이든 제품에 손상을 가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출입 제한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무조건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출입문 바로 옆에 걸쇠를 설치하여 보호자가 마음 놓고 반려견을 잠시 묶어 놓을 수 있게 배려한 점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위 사진의 경우 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 걸쳐 이런 배려는 흔히 찾아볼 수 있었지요. 아주 작은 가정집에서부터 신식 빌딩에까지.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지자체 별로 공원에 반려동물 배변봉투를 설치하거나, 반려동물 전용공원 조성을 검토하는 듯 긍정적인 움직임이 보이고 있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이러한 제도적 접근이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의식의 성숙없이 이루어 진다면 짧은 시일 내에 분명 그 간극이 생기고 말 것이라는 겁니다.

 

 

 사진 4. '우리는 개를 전적으로 환영해요' 라고 알리는 한 음식점

 

 

 'We are totally dog friendly' 'Dogs welcome' 과 같은 문구는 영국의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문구를 적어놓은 음식점을 보신 분이 계신가요? 저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왜 이러한 음식점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요?아마도 그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인간 이외의 종을 대할 때 '존중'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께서는 '음...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음식점이 많이 생기려면 반려견 훈련이 잘 되야 가능할꺼야'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자세는 반려견을 훈련시키려는 마음에 앞서 그들에 대한 순수한 '존중'에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반려견을 훈련의 대상으로, 가축을 육식의 대상으로, 동물원 동물을 관람의 대상으로 자연스레 인식하도록 조성된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그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지 못 하고 있으며, 가정의 식탁위에 오른 고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전혀 비판적 사고없이 당연한 것처럼 배우게 합니다. 또한 자녀가 어느 정도 크면 함께 동물원에 방문해서 동물원 동물은 본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냥 교육이라는 명목하게 관람하며 즐거워 합니다. 이러한 '훈련', '육식', '관람'의 관념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만들고 있습니다.

 

 '훈련', '육식'의 관념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자연스레 형성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렵채집 시대 때부터 서서히 순화된 개와 함께 살아왔으며, 잡식동물이라는 딜레마 속에 육식의 필연성을 이유로 소, 돼지, 닭과 같은 동물의 가축화를 이뤄왔습니다. '관람'의 관념은 '훈련', '육식'의 관념에 비해 짧은 세월에, 그리고 인위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경외심과 경멸심의 모순된 결합이 동물을 가둬두고 관람하는 행태를 초래한 것이지요. 주로 왕족이나 부유층의 즐거움을 위해 행해지던 '관람'의 관념은 최근에 들어 '종 복원, 생명 교육'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둔갑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관람'의 관념은 인간 사회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훈련', '육식'의 관념과 함께 묶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께서는 개, 고양이를 바라보거나, 고기를 먹거나, 동물원을 방문했을 때, 그들을 반려동물, 가축, 동물원 동물 이전에 한 생명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본 적이 얼마나 계신가요? 반려동물을 마치 물건처럼 사고 파는 업자들과,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로만 생각해 '구입'하는 반려인 아닌 자들이 형성한 문화, 가축이 사육되고 도축당하는 처절한 공장형 축산의 현실을 감추기 위해 거대 축산업계가 쌓아 올린 거짓된 장벽으로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는 문화, 종 복원 및 교육을 이유로 앞세워 수 많은 동물을 돈 벌이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일부 동물원이 형성한 문화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들을 그 존재 자체로 바라보고 있나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반려동물, 가축, 동물원 동물로만 바라보며 '훈련', '육식', '관람'의 관념 속에서만 맴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 이외의 존재를 그에 합당하게 '존중'하고 바라볼 때 우리가 더욱 인간다워 질 수 있습니다.

 

 

사진 5. Bowness on Windermere의 백조

 

 

 이제 Windermere 호수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Lake District 국립공원은 크고 작은 수 많은 호수와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Windermere 호수는 매우 큰 축에 속하는 호수이지요. 바로 이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각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잘 조성되어 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여전히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호수에 백조가 유난히도 많이 있다는 거였죠. 이 백조들은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다리에 인식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동물보호협회에 등록되어 세심한 배려를 받고 있었죠. 솔직히 직접 백조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가와 마치 반려동물처럼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지요.

 

 대한민국에서 비둘기는 혐오의 대상입니다. 깃털이나 분변으로 인한 세균 감염의 우려, 개체수 급증에 따른 생태계 위협, 심지어 다분히 그들의 움직임에 대한 혐오 등 여러 이유에서 대한민국에서 비둘기는 어느 새 평화의 새에서 공공의 적이 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백조와 비둘기 사이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백조에 대한 경외심과 비둘기에 대한 경멸심은 순전히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감정은 아닐까요? 사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고 먹이를 먹기 위해 오히려 다가옴은 물론이고, 깃털과 분변에 존재하는 세균 수가 백조와 비둘기 사이에 현격히 차이가 날 리도 없는데 말이지요. 비둘기 개체수가 증가한 것 또한 결국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결과인데 말입니다. 같은 조류(백조와 비둘기)를 바라볼 때 드러나는 우리의 모순적 사고를 돌이켜 보면, 인간 이외의 동물, 그리고 서로 다른 동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합당한지 배우게 됩니다.

 

사진 6. Windermere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 위

 

 백조를 뒤로 한 채 Bowness on Windermere에서 Ambleside라는 또 다른 작은 마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호수 중간 중간에 위치한 저택에는 저마다 아름다운 선착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아마도 요트를 띄우고 휴향을 즐기는 듯! 동물에게나 사람에게나 정말 천국같은 곳입니다. Lake District 지역은 영국 내에서도 어느 정도 부유한 층이 사는 곳인 듯 합니다. 사람들 모두 여유가 넘치며 친절했지요.

 

 

사진 7. Ambleside Pier에 도착

 

 

사진 8. Ambleside Pier 주변 공원에 위치한 대영제국 국기

 

 

사진 9. Ambleside Pier 를 떠나 트레킹 중 만난 조랑말

 

 Ambleside Pier는 사실 계획에 없던 여정이었습니다. Windermere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3~4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래도 가장 가까운 Bowness on Windermere에 가보자고 했던 것인데, 충동적으로 Windermere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에 몸을 실었고 Ambleside Pier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바로 이런게 혼자 여행하는 묘미가 아닐까요? 버스를 타기 위해 Ambleside 마을 시내로 가는 길에 만난 조랑말입니다. 뒤에 보이는 저 넓은 초원에서 거닐고 있던 아이인데, 저를 보더니 다가와서 뭐라고 흥흥 거립니다.

 

 

사진 10. 한 중년의 영국 신사와 함께 버스에서 만난 렉시

 

 Ambleside 마을 시내로 가는 길에 혹시 몰라 버스 시간표를 꺼내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시각이 오후 6시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Windermere로 돌아가는 막차 시간이 몇 분 안 남았었죠.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트레킹을 좋아한다지만 배를 타고 Windermere 호수를 가로질러 온 터라 도보로 돌아가려면 아마도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지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있는 힘껏 다해 뛰었습니다. 버스는 그대로 멈춰 있었고 저는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죠. 그런데! 버스 기사 아저씨께서 저에게 뒤를 가리키며 살짝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헐떡이는 숨을 참고 뒤를 돌아보니 그만! 한 영국 신사가 개와 함께 저를 바라보며 약간은 당황스런 웃음을 짓고 있지 몹니까! 진실된 사과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고 Windermere까지 가는 동안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영국에서는 꼭 맹인견이 아니더라도 버스에 어떠한 반려견도 함께 승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렉시라는 아이는 버스 승차에 아직까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렉시가 먼저 스스로 버스에 승차하기까지 보호자와 버스 기사 아저씨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이보다 동물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결국 버스 승차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렉시, 그러한 렉시를 위해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줬던 보호자와 버스 기사 아저씨 덕분에 제가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것이죠. 아직까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보더콜리 렉시는 RSPCA(Royal Society of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http://www.rspca.org.uk/home)라는 잉글랜드와 웨일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입양된 아이입니다. 영국에서는 반려동물과 함께하고자 할 때는 가장 먼저 '유기동물 입양'을 모두가 먼저 떠올립니다. '유기동물 입양'은 지역사회 내에서 우선적으로 장려되는 반면, '구입'을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 함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게 받아들여지지요. 따라서 RSPCA와 같은 권위있는 동물보호단체를 통한 입양은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RSPCA란 자선단체의 역사와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 합니다. 막대한 후원을 바탕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동물 기본권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전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물을 위해 활발히 뛰고 있지요.)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우리가 반려동물을 그저 '애완동물'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개나 고양이의 나이, 품종, 건강상태만을 먼저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어리고, 건강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보호자와 함께 지낼 수 있겠지요. 여기에 멋진 외모까지 갖추면 금상첨화임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과 함께하고자 한다면 동물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동물병원이나 펫샵에서 '구입'하는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을 겁니다. 이보다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줌이 반려인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첫 번째 고려사항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자세를 갖추기 위해는 반려동물을 한 생명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함이 전제되야 하지요.

 

어느 사회에서나 연약한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에 대한 규제가 있어야 함은 물론 반려인이 되고자 할 때 버림받은, 혹은 가정에서 자연스레 태어난 아이들의 '입양'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문화가 정착한다면, '판매'를 위해 고통받는 반려동물은 크게 줄지 않을까요? 이러한 의식의 성숙은 반려동물을 넘어 동물원 동물, 가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까지 이어지겠지요.

 

 

사진 11. 생활 속에서 동물과 함께하는 삶

 

 어쩌면 제가 바라본 영국인의 동물을 대하는 태도 이면에는 안 좋은 모습도 분명 있을 겁니다. 영국은 아직까지도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인종차별은 결국 종차별주의와 직결되니까요. 하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제도적 규제는 물론 동물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해 왔음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국에서 RSPCA나 National Trust같은 자선단체는 우리 고정관념 속의 시민단체 수준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동물과 자연보호에 있어서 굉장한 권력을 발휘하고 있지요. 이 자선단체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이에 따른 동물과 자연보호를 위한 여러 제도의 정착 뒤에는 국민 전체의 성숙된 의식이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2년 07월 14일,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사육장을 탈출한 두 마리 반달가슴곰 중 한 마리를 경찰과 엽사가 추적하여 사살한 것이죠. 곰의 탈출이라.. 물론 탈출한 곰이 시내로 내려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모두 우리 인간이 초래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대체 곰을 왜 그 좁은 우리 안에서 사육했을까요? 다분히 '관람' 목적도 아닌 단순히 웅담을 채취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마치 고로쇠나무에서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듯 사육당하는 곰들은 고통받고 있었겠지요. 

 

 그렇게 탈출한 곰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어야 했을까요. '곰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라는 논리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됩니다. 외국에서는 야생동물이 탈출한 경우 최대한 마취 등의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안전한 방법을 시도한 후에도 위협이 분명해졌을 때에만 사살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은 동물보호법이 시행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일선에서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들이 과연 그 법이 실효성이 있을까 의아해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 스스로도 그 법 집행에 대해 부정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를 흔히 전해 들을 수 있지요. 어떠한 법의 제도적 정착은 국민은 물론 그 집행자의 의식성숙이 함께 할 때에만 효력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 사살된 반달가슴곰을 보면 그 불균형을 반증하고 있어 몹시 아쉬울 따름입니다.

 

 

사진 12. 양들이 놀라지 않도록 반려인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RSPCA의 팻말

 

 

 Windermere로 돌아오는 길에 몇 정거장 먼저 내려 다시 트래킹을 시작했습니다. 이곳 Lake District에는 굉장히 많은 양 목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양모 때문에 일어났음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지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양이 놀랄 수 있으니 반려견과 함께 산책 때 주의를 당부'하는 RSPCA의 팻말로 한 번더 크게 놀랐습니다. 충분히 넓직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에게 이러한 배려까지!  

 

 

사진 13. Windermere에 위치한 동물병원

 

 

 숙소로 들어가는 길 맞은편에 위치한 동물병원입니다. 정말 멋진 저택이지요? 위 사진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한 창문에서 반려묘가 저를 노려보고 있었지요. 동물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리잡은 나라에서 수의사를 한다는건 굉장한 축복이겠지요. 대한민국에서 반려인들 사이에 수의사에 대한 불신이 심하고 자가진료가 성행함은 어찌보면 수의사 스스로 자초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70~9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대동물 중심이던 수의학이 급격히 소동물로 이동하면서 수의사 사이에서도 큰 실력의 편차가 생겼음은 무시할 수 없지요. 또한 그러한 빠른 흐름 속에 동물의 기본권에 대해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수의사의 의식 자체도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었습니다. 이제는 수의사 모두가 노력하여 동물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진료할 수 있는 날을 하루 빨리 앞당기길 바래 봅니다. 아니, 벌써 오고 있습니다. 제가 입학 할 때, 수의사가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이 또 다르니까요.

 

 다음 2부 <Borrowdale Valley in Lake District>에서는 거대한 빙하가 쓸고 지나가 형성된 협곡을 오르며 함께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