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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월간 PAPER 2월호 - 풋내기 수의사, 세상의 동물을 만나다

105일간의 세계동물조우 기록1

풋내기 수의사, 세상의 동물을 만나다 

샌프란시스코 서쪽 끝에 위치한 오션비치다. 이곳에서 마음껏 뛰노는 개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세상모르게 해수욕을 즐기는 개들과 녀석들을 향해 뛰어가는 소녀의 발걸음은 나로 하여금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 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1980년 김승옥

 

105일의 항해, 설렘 그리고 막막함

나는 20129월부터 12월까지 배를 타고 태평양 연안 10개국을 방문했다. “수의사가 배를 왜 타()?” 여정을 시작하기 전, 여정 동안,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질문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하긴, 어쩔 땐 나 자신한테도 물을 정도였으니. 사실 수의사는 사회에서 동물 진료뿐 아니라 예방, 검역, 방역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한다. 외국 항구에 입항할 때 선박은 위험한 질병이나 외래 동식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철저한 검역을 받는데, 군에서 수의장교로 복무 중인 나는 항해기간 동안 우리 배 검역요원으로 편승했다.

 

평소 동물 진료에만 관심을 가졌던 내게 이번 항해는 검역이란 수의사의 또 다른 중요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북태평양을 건너 미국,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 그리고 다시 남태평양을 건너 뉴질랜드, 호주, 파푸아뉴기니, 중국을 볼 수 있다니. 비록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육지에서보다 많았지만 소위 선진국에서 최빈국까지 각 대륙을 하나의 여정에 언제 또 담을 수 있을까 싶었다.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세상을 두루 돌아보면 마치 삶을 명료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삶의 장대한 무엇은 아니라도 좋았다. 다만 인간 이외의 존재, 동물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에 대해서라도 모습을 본다면 동물이란 존재가 그들 스스로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서로 간의 올바른 관계는 무엇일지, 모든 여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본 세상은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이고 내게 남은 건 막막함뿐이다.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후, 이런 내 혼란스러운 심경을 한 교수님께 털어놓았다. 그는 나의 막막함이 세상에 어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했다. 정답이라……. 어쩌면 동물이란 정해진 어떤 관념 안에 포함시킬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나는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천천히 되짚어 보니 그 막막함을 이루는 경험들이 좀 더 명료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서로 융합될 수 없는 고유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제 지난 여정의 막막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비록 정답은 구할 수 없더라도 함께 고민하는 이 시간이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의 한 공원에서 만난 아저씨와 세 개님. 세 아이 모두 유기동물보호소 출신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지 낯선 내가 다가오니 약간 경계를 했다. 애들아, 더 이상 상처받지 마렴.

스파링이라도 뜨듯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하하, 사실 현장 분위기는 정겹기 그지 없었다. 이 두 개님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 표정을 한 번 보라. 마음 한 켠에 쉼표를 둔 다는 건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 아닐까? 샌프란시스코 오션비치 입구에서 마주친 해맑은 소녀와 개. 고백하자면 나는 개보다 소녀에게 마음이 끌렸다. 어찌나 웃는 모습이 예쁘던지, 사진을 형들에게 보여줬더니 모두 입을 모아 "딱 네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하하~

히피문화의 발원지 애쉬베리 헤이츠에서 만난 훈남 청년과 개님. 둘은 대중교통만을 이용해 미국 전역을 여행 중이란다. 청년도 개님도 오랜 여행 끝에 다소 지쳐 보였지만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기에 든든해 보였다.

경전철 안에서 만난 아주머니와 엘리스. 엘리스의 눈물관이 막혀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오는 길이란다. 한국과 달리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목줄만 하면 큰 개 작은 개 할 거 없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삼총사. 처음에는 정말이지 인형인 줄 알았다. 떡하니 담요까지 깔아놓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말 그대로 사람 구경을 하다니. 녀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항상 동시에 시선을 옮겼는데, 금방이라도 랩이 튀어나올 기세다! ㅋㅋ

베니스 비치에서 만난 남자와 그의 반려견. 사진을 찍고 싶다 하니 흔쾌히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웬걸, 돌아서는 나를 붙잡더니 험악한 표정으로 돈을 달란다. 허겁지겁 주머니를 털어 지폐 몇 장을 건네니 웃자고 한 소리란다. '이봐, 나는 정말 무서웠단 말이야!'

 

 

 

개들의 천국 두보세 공원(Duboce Park)

우리 배는 북태평양을 건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배에서의 지난 13. 바다는 대기와 수심, 조류 등 다양한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매순간 각양각색의 모습을 내게 보였다. 겨울을 목전에 둔 바다는 잠잠하지 않았다. 2~5m의 너울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 배를 좌우로 뒤흔들었다. 동해를 빠져나갈 땐 마침 한국을 강타한 16호 태풍 산바의 심술이 러시아까지 미쳐 갑판으로 나가는 모든 문이 폐쇄될 정도였다. 열에 아홉은 귀 밑에 키미테를 붙이고 있었고, 의무실은 이마저도 소용없다며 먹는 약 좀 달라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다행히도 나는 남들만큼 멀미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혹여나 오밤중에 침대 밑으로 떨어지진 않을까 밤잠을 설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높은 너울 사이로 슬며시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 돌고래, 물살을 헤치는 배에 놀라 멀리 날아 도망가는 날치 친구들, 끝없는 수평선을 무대로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 그리고 밤하늘을 밝히는 은하수의 향연이 없었다면 이미 지쳐버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배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드디어 미국에 도착했다. 2주 만에 뱃사람이 다 된 걸까. 육지에 내린다는 게 선뜻 실감나질 않았다. 그것도 저 넓디넓은 태평양 너머 미국이라니. 저 멀리 해무 사이로 적갈색 땅이 점차 또렷이 시야에 들어오고, 미국의 관문이라 불리는 금문교 바로 아래를 지날 때에야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정말 내가 태평양을 건넜구나!’

 

입항 둘째 날, 군의관 형 두 명과 함께 아침 일찍 배를 나섰다. 목적지는 히피문화의 발원지라 불리는 애쉬베리 헤이츠(Ashbury Heights).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히피문화에 관심도, 아는 바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를 일찌감치 파악한 형들은 그곳에 가면 동물이 옷을 입고 사람은 벗고 다닌다더라!”며 꼬드겼고, 결국 나는 속는 셈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내려 애쉬베리 헤이츠로 걷던 중 주택들 사이의 아담한 공원에 들어서자 한국의 도심에선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개 여럿이 자유롭게 드넓은 풀밭에서 뛰놀고 있는 게 아닌가. 보호자가 던진 공을 있는 힘껏 달려 물어오는, 서로 어울려 세상모르게 뒹구는, 처음 만난 친구를 탐색하는 녀석 등 모두가 본연의 습성을 마구 분출하고 있었다. 한 컷 한 컷, 한국에 이 모습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함께 온 형들은 벤치에 앉아 내게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연중이 완전 물 만났네. 그러게 형들만 따라오면 된다니까!” 그들 눈엔 나도 개들도 신이나 보였나 보다.

 

문득 한국의 반려동물이 생각났다. 하루 온종일 실내에서 지내야 하는 그들에게 자유는 없다. 공원에 가더라도 항상 목줄에 매여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집에서조차 함께 지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성대나 발톱을 제거하기도 한다. 문제는 오늘의 상황이 급격한 산업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의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제도적 접근만으로는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사람과 동물 모두를 위한 가치를 품을 수 있는 중요한 기점에 서 있는데, 나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목소리를 내야할지 몰랐다. 그렇기에 이처럼 동물이 자유롭게 뛰노는 풍경이 한없이 부러웠다.

 

자네, 여기 사람 아니지?” 70세는 훌쩍 넘어 뵈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내게 묻는다. 그의 왼손엔 전자책, 오른손엔 빈 목줄이 들려있다. “, 한국에서 군함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왔습니다.” 군함이란 말에 할아버지는 흠칫 놀란 기색이다. “그럼 직업군인인가?” “아니요. 수의사입니다.” 그는 수의사란 말에 다시 놀란다. 그리곤 수의사가 왜 배를 탔지?”하고 묻는다. 노인과 젊은이의 대화는 그렇게 이어졌다. “할아버지, 저 개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흐뭇해요. 한국에는 이런 공원이 없답니다. 밖이면 항상 목줄에 매여 있어야 해요.” 그는 말했다. “이 공원은 사실 주민들의 양보 끝에 만들어진 거야. 이전엔 개를 멀리하는 주민과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픈 주민 사이에 깊은 갈등이 있었어. 다행히도 한 걸음씩 물러선 덕에 모두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되었지. 바로 이 지역 공원들을 개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원과 아예 들어갈 수 없는 공원, 그리고 꼭 목줄을 해야만 하는 공원으로 나누기로 한 거야. 그런데, 한국 반려동물 삶은 이곳과 많이 다른가?”

 

양보……. 친숙하면서도 이제는 낯선 단어……. 양보는 바로 우리의 미덕이 아니었던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을 터인데,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는 선례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아파트에 많이 살기 때문에 작은 개를 많이 키워요.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이곳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이곳 풍경이 제게는 사실 대단히 낯설답니다. 한국의 반려동물도 저들처럼 자유롭고 싶을 텐데……. 공원에서 친구 개를 만날 때조차 녀석들은 목 뒤로 조여 오는 긴장감을 느껴야 해요.” 우리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멀리서 새하얀 스코티시 테리어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우리 사이에 섰다. “요놈은 Gidget이라네. , 나는 Tom Burtch. 요놈 간식 먹으러 갈 시간이라 이만 가봐야겠어. 남은 항해에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네. Gidget, 갈까?”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고삐 풀린 개님의 모습은 나를 절로 미소짓게 한다. 뛰는 개님도, 보는 나도 행복하다. 실내에만 속박된, 목줄에 매인 삶은 어떤 생명에게든 옳은 삶의 행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이라도 본연의 본성을 표현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두보세 공원은 개가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공원과 꼭 목줄을 해야하는 공원, 그리고 동물이 들어갈 수 없는 공원으로 나뉘어 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이를 가능케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공원을 찾을 때 지켜야할 사항을 세세히 적어놓은 공원 안내판을 보노라면 미국의 지역사회가 공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동물을 반려한다는 것

입항 다섯 째날, 나는 샌프란시스코 동물보호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사흘 동안 많은 반려동물을 만났지만 유기동물은 단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길고양이 하나 눈에 안 띌 수가 있지?’ 나는 동물보호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동물보호소가 문 열기 전 남는 시간을 두보세 공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하염없이 뛰노는 개들이 다시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Tom 할아버지와 나눈 짧은 대화가 남긴 여운 때문이었다. ‘연락처라도 주고받을 걸. 뭔가 정이 느껴지는 분이었는데공원엔 역시나 아침부터 많은 개들이 보호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엔 할아버지와 Gidget도 있었다.

 

또 만났구려. 나는 Gidget과 항상 이 시간에 산책한다네. 그래, 오늘은 어디로 가려는가?” 자상하기도 하셔라.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SPCA(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미국의 대표적 동물보호단체)에 가려 합니다. 할아버지, 제가 Gidget과 함께 사진 찍어드릴까요? 나중에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할아버지와 Gidget은 흔쾌히 포즈를 취했다. “찰칵!”

 

샌프란시스코 SPCA는 정말 훌륭한 곳이라네. 구조된 아이들 모두 안락한 시설에서 지낼 뿐 아니라 훌륭한 의료진까지 갖추고 있다네. 자원봉사자도 아주 많아서 반려동물 입양, 교육, 치료 등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어. 자네 같은 사람은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건 어떤가. 두 시간 후 Gidget 건강검진이 있는데 자네만 좋다면 잠시 우리 집에서 목 좀 축이고 함께 동물병원에 가자고. 그곳 수의사랑 각별한 사이라 병원구경에 면담까지 주선해 주겠네. 동물보호소엔 그 후에 내가 데려다 주지!” 오늘은 출항일이라 점심 이후엔 배로 복귀해야 해 할아버지 계획대로라면 동물보호소 방문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처럼 따뜻한 호의를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와 함께 길을 나섰다.

 

공원을 떠나 10분 쯤 걸었을까. 할아버지는 여기서 잠깐 Gidget 간식 좀 받아가세하며 Gidget의 목줄을 풀었다. 그러자 Gidget이 곧장 동네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자리를 잡더니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주인아저씨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푸근한 인상의 주인아저씨는 그래, Gidget 왔구나. Tom, 오늘이 요놈 검진일이죠? 이번에도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하며 Gidget에게 비스킷 하나를 주신다. 그렇다. 그들은 매일 아침 오늘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Tom 할아버지, Gidget, 주인아저씨는 서로를 반려하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할아버지 집은 빅토리아 양식의 고풍스런 외관을 자랑하는 주택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찬찬히 집 구경을 시켜주셨다.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3층 테라스에 위치한 욕조였다. 겨울이면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저 멀리 금문교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곤 한단다. 지금은 은퇴하고 여러 가지 소일거리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네. 요즘은 게이역사박물관(Gay History Museum)에 틈틈이 나가고 있어. 시간만 되면 자네에게 구경시켜 주고 싶네만, 오늘 배가 떠난다니 어쩔 수 없지. 대신 다음에 올 땐 꼭 들려야 하네!”

 

집안 구경을 하는 동안 Gidget은 마치 자기가 안주인이라도 되는 듯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했다. 소박한 뒤뜰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리로 통하는 문 귀퉁이엔 Gidget이 드나들 수 있는 쪽문이 나 있었다. ‘부럽다. 우리 집 개, 고양이도 이렇게 자유롭게 해줘야 하는데집에는 스코티시 테리어 사진이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1978년부터 다섯 마리의 스코티시 테리어와 반려했다. Eunice, Franklin, Eleanor, Noddy, 그리고 Gidget. 할아버지는 한 녀석 한 녀석과 함께한 추억을 내게 나눴다. 지난 35년을 돌아보는 그의 눈엔 기쁨과 슬픔이 함께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Noddy의 사진에 적힌 구절을 이곳에 옮겨 본다. ‘Noddy has left the neighborhood. July 15, 1992 to January 14, 2009. Sixteen and a half years of memories’

 

잠시 후 우리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Gidget의 주치의는 병원을 구경시켜주며 내 질문에 하나하나 성심껏 답해주었다. 사실 시설이나 운영 면에선 한국의 동물병원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수의사, 간호사, 보호자 모두가 동물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로 그날의 일이다. Gidget의 심박, 호흡 수, 체온 등 모든 기본검진이 문제없이 끝났고 이제 예방접종만 남았다. 하지만 녀석은 유난히도 주사 맞는 걸 싫어했다. 낯선 사람들, 다른 개와 고양이 냄새, 온갖 약품 냄새에 둘러싸인 Gidget은 대번에 공포의 그날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주사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아이들은 대게 어떻게든 토닥여 후딱 주사하는 게 내게 익숙한 풍경인데, 이곳에선 20분이 넘도록 Gidget 스스로 긴장을 풀도록 차분히 기다리는 게 아닌가. ‘좋은 수의사는 동물에게 말을 하지만, 훌륭한 수의사는 먼저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수의사 사이의 속담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각박한 도심 인심에 동물을 위하는 마음까지 메마르고 있는 오늘, 서둘러 주사를 놓기보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많이 불안하지? 편해지면 말해주려무나라며 동물을 생명으로 배려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왜 하필 출항 날이 되서야 할아버지와 친해진 걸까. 더욱 많은 걸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것도 우리의 인연. 앞으로 또 다른 시간을 함께하길 바랄뿐이다. 그는 게이의 고향, 카스트로 거리에서 날 내려주었다.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악수, 떠나가는 나를 응시하던 Gidget의 눈에 깃든 따스함을 안은 채 나는 두 번째 기항지인 LA로 향했다.

 

 

 

 

출항 날 다시 찾은 두보세 공원에서 나는 Tom 할아버지, Gidget과 재회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제가 Gidget과 함께 사진 찍어드릴까요?"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기뻐하며 Gidget과 포즈를 취하셨다.

Tom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목줄을 풀자 Gidget은 뒤뚱대며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 주인아저씨 앞에 앉아 거절할 수 없는 눈빛을 보냈다. 주인아저씨가 못 이기는 척 비스킷을 건네자 Gidget은 어울리지 않는 날랜 몸동작으로 냉큼 받아먹었다. 서로 반려한다는 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Tom 할아버지의 집 안 곳곳에서 그와 함께한 다섯 아이의 따스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Noddy의 액자부터 Gidget의 사진이 들어간 텀블러까지.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녀석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 온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동물병원 처치실이다. Gidget의 주치의는 병원을 구경시켜주며 내 궁금증을 하나하나 해소시켜줬다. 시설 면에선 한국 동물병원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수의사와 수의 간호사의 손길에서 동물을 배려하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1900 Built' 바로 샌프란시스코 동물병원이 문을 연 해다. 무려 113년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아마 한국에선 이처럼 역사 깊은 사람 병원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액자 안에는 대대로 이 병원을 맡아온 수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풍요롭지만 차가운, 미국의 유기동물정책

LA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나는 지난 시간을 정리했다.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반려동물과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했다. LA를 목전에 앞둔 내 마음은 이제 동물보호소로 향했다. ‘Tom 할아버지 말처럼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거야입항 둘째 날, 나는 SPCA LA지부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차가운 모순과 마주하고 말았다. 이는 바로 길고양이로부터 물, 음식, 보금자리를 제거하자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유기동물정책. 그토록 진정으로 동물을 반려하는 미국에서 도리어 이런 정책을 장려하고 있다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들떴던, 따스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다. 미국인은 보호자의 반려 없는, 길에서의 개와 고양이 삶을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좋지 못한 무엇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보호자와 함께하는 반려동물이 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모습이다. 모든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란 범주에 밀어 넣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길고양이를 향한 차가운 정책으로 나타났다. 우선 길고양이를 다시 길 잃은 고양이(Stray Cats)’야생고양이(Feral Cats)’라는 범주로 구분해버렸다. 길 잃은 고양이는 가정에서 살던 고양이로 우리가 구하고 보호해줘야 할 무엇, 즉 반려동물로 살아가야할 존재다. 야생고양이는 길에서 나고 자란 고양이로, 사람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 음식, 보금자리를 제거함으로써 길에서 고양이가 번식할 기회를 억제하자는 게 이곳 유기동물정책의 요체. 바로 오늘의 아픔을 감수한다면 훗날 길에서 고통 받을 수많은 고양이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로 무장한 것이다.

 

미국에 머문 지난 열흘 동안 좀처럼 유기동물을 만날 수 없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같은 동물을 그렇게 구분지어 버리다니. 하지만 어찌 고양이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동물이 반려동물, 야생동물, 산업동물 등으로 구분돼 우리 인간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도 판이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반려되고, 보호되고, 죽임 당한다. 내게 LA 유기동물정책의 성공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특히 생명의 문제를 그렇게 다룬다는 건 더욱 공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모순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난다. 한국에 돌아온 후 20131, 다름 아닌 우리 집에서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부모님 댁에 살던 고양이 소중이가 어릴 적 자유로이 집밖을 오가며 살던 시절이 그리웠는지 집을 나가고 만 것이다. 주말 내내 동네를 쑤시고 다니고, 전단지를 붙였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근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포항으로 내려가야 했고, 소중이 찾기는 부모님 몫이 되었다. 그러던 3일 후,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전단지 속 사진이랑 똑같은 고양이가 요 앞에 자주 지나다녀요.어머니는 당장 그곳을 샅샅이 뒤졌다. 이윽고 내게 온 답장은 다음과 같다. “연중아, 소중이가 아니야. 얼마 전부터 엄마가 소중이 돌아오라고 동네 곳곳에 캔 사료를 뒀는데, 한 새끼 고양이가 매번 그걸 먹더라. 주민이 말한 고양이도 그 아이인 것 같아.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중이가 반려동물, 아니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행동은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반려동물로 살아온 소중이, 녀석을 위한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새끼 길고양이. 모두가 고양이이며, 동물이고, 생명이지 않은가. 소중인 5일 뒤 새벽녘 스스로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기쁜 마음에 잠도 잊은 채 녀석을 씻기고 먹였다. 하지만 다음날 해질녘, 당신께서 내게 보낸 문자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 캔 사료 들고 다시 나가보려고. 자꾸 그 새끼 고양이가 눈에 밟히네. 삶이 참 그렇다? 누구는 집안에서 따뜻하게 배불리 살아가고, 또 누구는 헐벗고 병든 채 사람 눈치 봐가며 살아가고.”

 

 

동물보호소를 떠나 배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릿속은 보는 이를 절로 미소 짓게 하는 Tom 할아버지와 Gidget, 야생고양이로 몰려 배고픔에 메마른 거리에서 사라졌을 고양이의 잔상으로 뒤섞였다.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와 동물 사이엔 어떠한 정답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물을 우리의 수단 이전에 생명 그 자체로 바라보는 마음은 어느 문화, 어느 세대에서나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 속에 존재하듯, 인간은 인간 이외의 존재와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막막함을 안은 채 미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지닌 남미로 향하는 배에 나는 몸을 실었다.

 

 

 

 

▲LA 유기동물보호소는 크게 입양, 신고, 교육 센터로 나뉜다. 든든한 후원과 풍족한 자원봉사자가 있고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된 덕에 이곳에 들어온 유기동물은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 한 가지 부러웠던 건, 입양, 교육 센터뿐만 아니라 신고센터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는 것. 반려동물등록제가 정작되어 있어 반려동물을 잃어버리더라도 유기동물보호소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LA 유기동물보호소 내 고양이 생활공간. 건강을 회복한 고양이는 격리실을 벗어나 이곳에서 생활한다. 안락하고 넓은 공간, 고양이 습성을 고려한 다양한 설치물 등에서 세세한 배려가 엿보인다. 유기동물을 입양하고자 하는 보호자는 이 방에 들어와 직접 고양이를 만나보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입양과 교육이 자연스레 함께 이뤄지는 것이다.

미국의 한 가정집 창문에 붙어있는 전단지. Moto에게 행복한 삶은 과연 무엇일까? Moto는 지금쯤 집으로 돌아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