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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아기 길냥이 입양, 언제나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수의사 국가고시 준비에 한창이던 어느겨울 밤. 현관 밖에서 고양이 울음이 들려왔다. 고양이 소리야 종종 들려오는 일이지만 그날의 울음은 유난히 크고 갸날펐다.  우리 집은 건물 맨 위층인지라 동네 고양이울음이 이렇게까지 가까이 들리진 않는다. 역시……. 현관에 놓인 신발장 뒤에는 고작 태어난 지 4~5주 정도로 보이는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웅크려 떨고 있었다. 당시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새끼들이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어미는 어디에, 추운 겨울 새끼들의 건강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기들이 한창 수의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목적에 둔 내 앞에 나타난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새끼들에게 접근해 보았다. 새끼들은 심하게 하악질을 했다. 고양이가 사람을 낯설어 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새끼들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새끼들이 이처럼 극도로 불안한 이유가 뭘까. 나는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가보았다. 역시 건물 바로 앞에는 새끼를 잃어 안절부설 못하는 어미고양이가 있었다. 추측건데, 매서운 추위를 피해 새끼고양이들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가 문이 닫혀버린 것 같았다. 결국 새끼들은 돌아오지 않는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단지 낯선 침입자였을 뿐이었다. 

새끼들에게 스트레스를 더 이상 주지 않기로 결정하고, 따뜻한 음식과 담요를 곁에 두고 건물문을 열어둬 어미가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문을 열기 위해 나타나자 어미는 자동차 밑으로 급히 몸을 숨겨 경계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바로 저 위에 피붙이들이 있는데, 한 인간이 그곳에 있다. 나는 더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집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문을 열어보니 새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행히도 밥그릇은 텅 비어었다. 아마도 어미와 새끼들을 함께 다른 보금자리로 떠났으리라. 그 고양이 가족은 당시 나를 아직까지 위험한 침입자로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따뜻한 음식과 보금자리를 제공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을까. 

만약 그때 내가 추위에 떨고있는 새끼들을 따뜻한 보금자리와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나는 그 새끼들을 평생 책임졌어야 했을 것이다. 생후 4~5주령의 새끼들은 어미의 보살핌 아래 사회화가 한창 이뤄져야 할 시기인데, 이때 잠시 사람의 손을 타고 돌려보내지면 야생(도시에서의 길냥이들의 삶은 야생과 크게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야생본능은 도시의 생활에 적합하게 변화되고 있다.)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교육을 제때 받지 못해 생존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새끼들을 데리고 들어오려고 판단했을 땐 평생 책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내겐 그 순간 뜨거운 감성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만약 새끼들이 내게 하악질을 하지 않고 온순게 대했다면 그대로 데리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평생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었더라도 밖에서 아기들을 걱정하며 안절부절 서성이고 있는 어미와의 생이별은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새끼들은 분명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미가 있었고, "따뜻한 보금자리와 음식"은 정작 새끼들보다는 나를 위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결국 정당화시킬 수 없었다. 새끼고양이들은 내가 아닌 어미가 필요했다.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개입은 동물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당화될 수 있을 때에만 신중히 이뤄져야 함을 배운지 2년이 흘렀다. 지금은 어느새 수의사가 되서 해군병원에서 의무복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2주전쯤, 2년 전 일을 다시 상기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한가로운 주말 군의관 당직실에서 있는데 한 병사가 고양이에게 물려 응급실에 왔다는 전화가 왔다. 수의사인 나는 사람 진료와는 관계가 없지만 
동물에게 물렸다고 하니 궁금증이 생겨 응급의학과 군의관과 함께 응급실로 가보았다. 상처는 매우 깊었다. 정황을 들어보니 아기고양이에게 물렸다고 했다. 다들 알다시피 고양이의 이빨은 굉장히 날카롭다. 더욱이 아기고양이의 유치는 영구치보다 훨씬 더 날카롭기 때문에 아무래도 깊은 상처가 생긴 듯 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름 때문에 광견병을 개한테서만 감염되는 질병으로 알고 있지만 고양이를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물한테서도 감염될 수 있다. 고양이는 감염되면 사람을 물어 감염시키기 전에 죽어버릴 만큼 증상이 개에 비해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고양이에 의한 사람의 감염사례는 너구리나 개에 비하면 매우 적은게 사실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에선 아직까지 한강 이남으로는 광견병이 보고되지 않고 있으며 90년대 이후 사람 감염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양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광견병이 의심되면 사람을 물은 동물을 일정기간 격리시켜 증상발현 여부를 관찰하며, 해당 증상이 나타나면 그 즉시 사람에게 광견병 백신접종을 한다. 만약 물은 동물이 도망가거나 죽어서 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엔 그 즉시 백신접종을 하도록 되어 있다.)

병사 말에 의하면 군부대 내에서 근무하던 중 풀숲에 혼자 있는 아기고양이를 발견하여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데려온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함께 놀던 와중에 물린 것....;;


그리고 어제 일이다. 근무를 서던 중 사무실 밖으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와 나가보니 자동차 밑에서 위 아이가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병사들이 보더니 지난주에 병사를 물었던 바로 그 고양이라고 한다. 왜 그 아이가 여기 있냐고 물으니 군부대에서 군견 이외의 동물을 키울 수 없는 규정 때문에 결국 밖으로 다시 내 보내졌고, 그 이후에 매일 건물 앞에 나타나 배회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순간의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에 야생의 어린동물을 너무나도 쉽게 인간의 세계로 데려오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동물에게 느끼는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은 인간입장에서 보면 선의이지만 신중한 판단이 결여될 경우 동물의 입장에선 어쩌면 굉장한 악의, 즉 인간다운 생각일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철원 야생동물 보호센터에 실습갔을 때 야생동물 수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산에서 혼자 방황하는 새끼 고라니를 보고 귀여워서 집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고라니가 조금만 더 커서 감당이 안될 때 야생동물 보호센터로 데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끼 고라니든, 고양이든 보통 야생에서 혼자 발견될 때 어미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경우가 많다. 출산 이후 새끼를 돌보지 않는 어미도 가끔 있기도 하지만 일단 아이가 어느정도 컸다는 것 자체는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동시에 이는 아이가 보금자리 밖으로 갓 외출하기 시작할 시기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로 이 시기에어미가 잠깐 먹이를 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람들로부터 쉽게 발견된다. 사람들은 아이가 길을 잃어버리거나,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생각해 동물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없이 강제로 입양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말 그대로 납치인 것이다. 오히려 아주 어린 아기들은 보금자리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노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동물은 일단 어릴 때 무리에서 벗어나 사람의 손을 타게 되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갔을 때 급격히 생존할 수 있을 확률이 떨어진다. 사람의 손을 탔기 때문에 야생본능이 떨어질 뿐더러 야생의 기존 무리들은 한번 무리를 떠났던 동물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때문이다. 길냥이의 삶도 도시안에서 새롭게 구성된 철저한 야생이다. 결국 우리의 신중하지 못한 선택이 철저하게 소외되고 생활력없는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데려오지 않는 게 그 아이를 위한 행동일 수도.


군부대엔 굉장히 길냥이가 많다.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군부대에서 나오는 엄청난 음식물쓰레기는 길냥이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나름의 서열이 있다. 이곳 길냥이들은 종종 서열싸움을 하는지 몸에 상처가 굉장히 많다. 특히 보스 길냥이(우리는 짬타이거라 부른다.)는 온몸에 상처로 인한 흉터를 가지고 있는데, 얼마나 길냥이들 사이의 서열다툼이 치열한지 알 수 있다. 이 아기고양이는 이들 무리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식당 근처도 아닌 자신이 잠시 생활했던 건물 앞을 배회하고 있었고 지금 당장 뭐라도 먹이지 않으면 추운 겨울에 굶어 죽을 것만 같아 따뜻한 우선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사료를 주었으나 입맛에 안 맞는지 먹지 않아 술 안주로 챙겨놓았던 번데기를 줬더니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댔다.

"그래.. 번데기가 고단백 음식이니 도움이 되겠다" 싶었지요.



녀석은 번데기를 정신없이 먹더니 어느새 실내에 적응하였는지 드러눕기도, 앵기기도 했다. 뻔뻔하기로 소문난 고양이가 10분도 안되 먼저 애교를 부리다니 정말 배가 고프긴 고팠나보다. 하지만 곧 슬슬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에 밖으로 다시 나간다면 이미 사람 손을 탄 아이라 굶어 죽기 십상인데 어떻게 해야할까... 하지만 야생의 본능도 남아 있어 어느 집에서나 쉽게 적응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사무실에서 키우는 것도 규정에 어긋나고 내 반려묘인 소중이도  이 때문에 지금 서울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있어 이 아이를 내가 키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고민하던 와중에 다행히도 옆 사무실 사람이 녀석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날 저녁 아이를 그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 야생과 반려의 습성이 강하게 동시에 존재하는 이 아이가 반려묘로 잘 지낼 수 있을까. 혹시나 파양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처음 병사들이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길냥이 무리에서 건강히 살았갔을지도
 


혹시 헤매고 있는 길냥이를 발견했을 땐 데려오기 전에 꼭 한번 더 신중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내 앞에 있는 길냥이의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봐야한다. 따뜻한 물, 음식, 보금자리 없이 고통받는 길냥이에게 이를 제공하는 건 너무나도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입양에 미칠 땐,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 입양이 아이를 위한 선택일 수도, 아니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고민해도 길냥이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없다. 하지만 뜨거운 감성에 차가운 이성이 함께한다면 길냥이를 위한 우리의 마음이 꼭 의도한대로 전해지리라 믿는다.


인간의 "따스함", 

때론
동물에게 단지 "이기심"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