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Whitehead)란 이름 그대로 녀석은 흰 머리를 가지고 있다. 작은 벌레 한 마리를 맛있게 먹는 순간 포착! '띠리띠리 마땅키'의 울창한 원시림은 새들엑 풍성한 먹이를 제공학 있었다.

 

105일간의 세계동물조우기록 3.뉴질랜드, 호주, 파푸아뉴기니

생명을 고민하며 우리를 돌아보다

 

나는 왜 동물이야기를 할까

뉴질랜드로 향하던 어느 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나를 깨운 건 어떤 소리도 움직임도 아닌 고요였다. 모두가 적막에 취해 잠든 새벽녘, 홀로 갑판에 나선 내게 바다는 지금껏 꼭꼭 숨겨두었던 얼굴을 내밀었다. 바다의 민낯이라고나 할까. 우리 배는 비단결 물살을 가르며 파도도, 바람 한 점도 없는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기상학적 적도, 바로 모든 기후가 평형을 이루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바다는 고요할 때 가장 장엄하다는 걸 나는 그날에야 알았다.

 

광활한 바다를 보며 '그동안 기항지에서의 시간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만약 배가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배를 탔건 안 탔건 큰 차이가 없기를 간절히 원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그 선택이 실패했을 때, 혹은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는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변함없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중요한 그저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아닌 듯했다. 아무리 배를 타고 세상을 본다 하더라도 작은 경험 하나하나를 자신만의 무엇으로 가져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생각에 얿매여 지쳐가고 있었다.

 

당시 나는 배의 비좁은 철제 침상에 틀어박혀 지난 경험이 주는 의미를 도출하려 애쓰고 있었다. 어떤 기억은 당시보다 강렬해지고, 또 어떤 기억은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혹은 내 마음이 원하는 모습대로 왜곡된 기억도 있었다. 너무나도 다른 두 대륙, 특히 그곳 동물들의 삶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알던 동물은 도리에 예전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이러한 막막함은 내 강박적인 성격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떤 정답을 찾으려는 고집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알면서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군복무를 시작한 이후 어느덧 책장에는 동물복지와 관련된 책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쩌다 동물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끔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수의사이기 때문에 동물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내게 있는 건 아닐까. 이상적인 수의사의 틀에 스스로를 억지로 끼워 넣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순수하게 동물을 위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이내 작아졌다. 지난 105일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항해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발버둥 쳤던 의식적인 노력이 순수함이 아닌 욕망의 발로일 수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남은 기항지에서 나의 이러한 성향은 좀 더 명확히 드러났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진국인 뉴질랜드와 호주, 그리고 세계 최빈국인 파푸아뉴기니에서 나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동물이 아닌 사람을 대할 때도 이는 정확히 드러났다. 말끔한 서구인과는 말 한 마디라도 더 하려 애썼던 반면, 파푸아뉴기니 의료봉사 때는 사람을 먼저 위하기보다 설마 결핵이 내게 옮지는 않을까 매순간 마스크를 다시 쓰기 바빴다. 사람도 차별하던 내가 어찌 모든 동물을 소중하게 바라보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할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온 오늘도 동물복지를 외칠 때마다 모순된 나를 목도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왜일까….

 

 

케레루(Kereru)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비둘기다. 가끔씩 케레루가 큰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는데, 정말이지 멧돼지라도 뛰쳐나오는 줄 알았다.

모든 기후가 펴연을 이룬 기상학적 적도. 이때의 바다를 보고 있자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실제 옛날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고 한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걸까.

뉴질랜드와 호주의 공원에서는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공원이 인위적인 녹지를 넘어 하나의 자연생태곌 보호되고 있으을 의미했다.

랑기토토 섬은 호주에서 건너온 들쥐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철저히 과괴된 과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섬 곳곳에는 외래종의 번식을 막기 위한 덫이 설치돼 있었다.

 

자연을 보전하기 위한 착한 개입

뉴질랜드와 호주 입항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격한 검역이 문제였다. 외국으로부터 위험한 질병이나 동식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행해지는 검역, 이 절차의 무사통과는 이번 여정 동안 내가 맡은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이전 기항지까지는 검역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군함이라는 특수성이 이점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검역이 허술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호주에서의 검역은 이전 기항지와는 분명히 달랐다.

 

뉴질랜드 입항 날, 우리 배에 뉴질랜드 검역관이 승선했다. 제출된 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던 그는 첫 기항지인 러시아에서 받은 방역확인서를 요구했다. 방역확인서라니 당혹스러웠다. 가지고 있는 방역확인서라곤 한국에서 받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9월은 러시아에서 중국매미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라 이때 러시아를 방문한 배는 모두 출항 전 러시아 검역원으로부터 방역을 받도록 되어 있단다. 검역관은 그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우리 배는 러시아에서 어떠한 방역도 받지 못한 터였다. 아무래도 민항이 아닌 군항에 입항한 터라 러시아 해군과 검역원 사이에 사전 조율이 부족했던 듯했다. 나는 검역관에게 우리 배가 군함이고 중국매미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사정할 뿐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는 우선 배를 둘러 본 후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모든 레이더 작동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중국매미는 배에서 주로 레이더에 알을 깐단다. 나는 서둘러 지휘부에 레이더를 멈춰달라고 했다. 그들도 나처럼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작 벌레를 보기 위해 군함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다니, 승조원 모두에게 레이더에 오르는 검역관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검역관은 군함 가장 꼭대기 레이더까지 올라가 중국매미가 배에 없음을 확인했지만 아직 검역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배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서류에 기재된 사항이 틀림없는지 확인했다. 저장창고에 있는 식품의 원산지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싹이 튼 곡식은 없는지, 수북이 쌓인 먼지더미를 헤집어 벌레가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취사장 위생이나 오폐수 관리까지, 마치 검역이 아닌 검열을 받는 느낌이었다. 이전 기항지 검역 때 놓친 사항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혹시나 입항을 거부당하는 건 아닐까. 꼬박 16일을 걸쳐 뉴질랜드로 건너왔는데, 장교 한 명의 과오로 뱃머리를 돌리는 일은 정말이지 상상하기 싫었다.

 

다행히도 검역관은 큼직한 도장이 찍힌 검역확인서를 내주었다. 그가 말했다. “다소 까다로워 보일 수 있지만 검역은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내 나라의 자연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돼요. 아마 호주 검역은 더 까다로울 테니 미리미리 준비하세요.” 스스로 자국의 자연을 지키다. 나는 그동안 검역을 그저 아무 탈 없이 해결해야할 일로만 여기고  있었. 우리 배로부터 유입된 질병이나 동식물이 해당 국가의 자연을 얼마나 훼손할 수 있는지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건강한 자연 생태계가 존립해야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건강해 질 수 있음을 생각지 못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 국가의 검역규정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호주 검역은 이전 기항지에서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규정 하나하나가 문서상의 절차로만 남지 않고 검역관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일부 승조원은 지나친 게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환경에 있어서는 이상하리만큼 관대한 우리에게 검역관의 모습이 무척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연, 아니 생명을 대함에 있어 집행자의 이러한 실천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 터, 어느새 나의 당혹감은 부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산섬인 랑기토토 섬은 그 모습이 제주도와 매우 비슷하다.

한가로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는 '띠리띠리 마탕기'를 제외한 뉴질랜드 섬들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 아름다운 섬의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숲의 녹음이 한데 어우러져 어느새 나를 녹여버렸다.

'도둑을 조심하세요!' 이 안내판은 겉으로는 타카헤(Takahe)란 새의 도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새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길들여지면 야생의 본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띠리띠리 마탕기 곳곳에는 새들의 정착과 방문객 교육을 위한 여러 구조물이 설치돼 있었다. 나무 뚜껑을 열면 나뭇가지들이 들어 있는 인공 둥지가 있어 리틀블루펭권(Little Blue Penguin)이 이곳에 알을 낳아 부화시킨다.

둥지에 수북이 쌓인 나뭇가지로 미루어 보아 얼마 전까지 스티치버드(Stitchbird) 가족이 이곳에 머문 듯하다. 그날 만난 스티치버드 중에 이곳에서 태어난 녀석도 있을까?

벌처럼 꿀을 먹고 사는 허니이터(Honeyeater)과 새들을 위한 꿀물이 들어있는 구조물이다. 아직 꽃이 만발하기 전이라 그런지 이곳은 꿀물을 찾는 새들로 북적였다.

정착지를 떠나지않는 강한 습성 때문에 그 수가 나날이 줄고 있는 라이플맨(Rifleman). 띠리띠리 마탕기에서는 이 새의 보전에 특히 힘쓰고 있다. 다리의 표식은 개체 하나하나가 철저히 관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들의 성지 뉴질랜드의 '띠리띠리 마탕기'

뉴질랜드 입항 셋째 날, 나는 홀로 페리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새들의 성지라 불리는 띠리띠리 마탕기, 마오리어로 바람에 살랑이다란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오클랜드 북동쪽의 작은 섬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 섬을 자연보전구역으로 지정, 1984년부터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지원을 받아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사이 30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심어졌는데, 특히 외래종의 유입을 철저히 막은 덕에 울창했던 원시림은 옛 모습을 빠른 시일 내에 되찾았고 떠났던 새들도 자연스레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 티리티리 마탕기에는 78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가히 새들의 성지라 불릴 만 했다.

 

띠리띠리 마탕기에 함께 가자며 군의관 형들을 졸랐으나 다들 “16일 만에 육지를 밟았는데 배를 또 타자고!?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힘들겠다, 연중아.”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나도 다시 배를 타기는 싫었기 때문에 전날 밤만 해도 그곳에 꼭 가야하나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새들의 성지라는 감히 얻기 힘든 별칭, 그리고 띠리띠리 마탕기란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이름의 마력에 굴복해 버렸다.

 

함께 섬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나처럼 젊은 또래에게 자연은 큰 관심이 되지 못 하는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지난 105일의 여정 동안 수백 명의 젊은 승조원 중 자연을 찾아 나선 이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야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까. 아니면 메마른 도심에서 성장한 우리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자연을 생각하는 법을 모르게 된 걸까.' 나는 돌연 씁쓸해졌다.

 

섬에 도착하자 자원봉사자에 의한 교육이 이뤄졌다. 섬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자원봉사자와 이를 듣는 방문객 모두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하루에 이 섬을 방문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오클랜드에서 이곳을 오가는 페리 또한 하루에 한 편뿐이라 섬에 상주하는 자원봉사자를 제외한 모두가 오후에 돌아가는 페리를 꼭 타야만 한다. 자원봉사자는 만약 이를 놓치면 수상택시라도 불러 섬을 떠나야 한다며 시간을 엄수할 것을 연신 강조했다.

 

모든 설명을 마친 자원봉사자는 , 빨리 섬을 보고 싶으시죠? 이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절차만 남았습니다. 이 섬의 생태계는 사실 자연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오늘의 띠리띠리 마탕기를 만들었지요.”라고 말하며 방문객의 가방과 신발 밑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혹시 생태계를 해칠 수 있는 쥐나 벌레 같은 동식물이 없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 이곳에서도 검역이 이뤄지는구나.’ 이틀 전 뉴질랜드 검역이 바로 떠올랐다. 한 나라 안에서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을 대상으로 또 하나의 검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자연을 보전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자연과 함께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단 말인가.' 검사를 끝내고 섬에 첫 발을 내딛는 발걸음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띠리띠리 마탕기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딜 가나 각양각색의 새 소리와 울창한 원시림, 푸른 바다가 나를 에워쌌다. 살랑대는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눈앞에 나타난 한 마리 새를 카메라에 담을 때 일이다. ‘찰칵! 찰칵찰칵!’ 녀석은 그만 셔터소리에 숲으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여성이 나를 나무랐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면 어떻게 해요! 어린아이도 안 그러는데그 여성의 손에는 큼직한 망원경이 들려 있었다. 나는 멀리서 새를 관찰하고 있던 그 여성을 방해한 거였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 새처럼 숲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이 섬을 방문한 사람들의 손에는 카메라만큼이나 망원경이 많이 들려 있었다. 카메라나 망원경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는 동물, 아니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큰 연관이 있었다.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피기에는 아무래도 카메라보다 망원경이 훨씬 적합하다. 띠리띠리 마탕기를 방문한 사람들의 의식은 이곳을 보전하려는 자원봉사자들 못지않게 성숙했던 것이다.

 

오후 3. 나는 간신히 돌아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다음 날 오클랜드를 출항한 우리 배는 호주 시드니에서 4일을 보냈다. 비록 8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뉴질랜드와 호주의 자연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혹자는 이 두 나라는 역사가 짧고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어 지금의 모습을 가능하다고 했는데, 처음 나는 그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아무리 여건이 좋아도 자연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기항지인 파푸아뉴기니에서 이 생각은 크게 흔들렸다.

 

'개와 함께 여행하는 승객을 위한 자리입니다.' 호주의 한 페리에서 본 문구다. 태평양을 돌며 느낀 한 가지는 반려동물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시민의 권리일 수 있다는 거였다. 

뉴질랜드 공원에서 만난 수탉이다. 이곳 공원에서 닭들은 먹기 위해 키워지는 게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서 자생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 도심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도마뱀은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어릴 적 개천에서 각종 곤충과 개구리, 도마뱀 등을 잡곤 했는데(그래서인지), 오늘날 이들은 주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띠리띠리 마탕기 섬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는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새를 만날 수 있다. 시드니 왕립식물원 표지판 위에서 찌르레기 한 마리가 연신 모래를 부르고 있다.

앵무새 떼가 도심에? 놀랍게도 시드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좁은 새장에 갇혀 사는 앵무새만 봐서인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마지막 에덴동산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르즈비 입항을 하루 앞둔 2012125, 승조원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의료봉사와 공식행사를 제외한 어떠한 상륙도 할 수 없다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에 이은 두 번째 상륙금지. 불안한 치안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마약으로 인한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인 콜롬비아에서와 달리 대부분의 승조원은 이번 명령을 쉬이 납득하지 못했다.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파푸아뉴기니에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를 낙담시켰다. 현지 상황을 대사관으로부터 전해들을 수밖에 없는 지휘부도 꼭 금지명령을 내려야만 하나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승조원들 사이에는 지레 겁먹은 거 아니야?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겠어.” “자유여행은 아니더라도 단체여행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나 또한 다른 나라에서처럼 자유롭게 동물을 찾아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맥이 풀린 터였다. 그나마 의료봉사를 빌미로 잠깐이나마 바깥구경을 할 수 있어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는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하루쯤은 상륙이 허락되지 않을까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콜롬비아에서도 이튿날 단체 정글투어가 이뤄진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배는 지구 마지막 에덴동산, 파푸아뉴기니에 입항했다.

 

입항 첫날, 한 소년이 환영행사 도중 쓰러졌다. 지난 사흘 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단다. 수액을 맞고 기력을 회복한 그에게 우리는 우유와 초코파이를 건넸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음식. 그는 한참 주위를 살핀 후에야 조심스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주저하는 그를 보고 한 군의관이 말했다. ‘녀석은 지금 이곳에 오지 못한 가족 생각이 가득할거야. 혼자 먹기 미안해서.’ 의무실에는 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그는 병상에 누운 채 설사를 했다. 소년에게 우유는 살아가며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끄러울 법도 한데 그에게는 아이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선교사 손을 맞잡고 배를 떠나는 순간까지 아이는 끝내 웃지 않았다. 나는 소년의 표정에서 파푸아뉴기니가 우리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곳임을 직감했다.

 

이튿날 의료팀은 의료봉사가 이뤄질 까리타스 수녀원으로 향했다. 함께 동승한 대사관 직원이 전한 파푸아뉴기니 의료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국민 대부분은 평생 의료기관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결핵과 말라리아, 에이즈로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포트모르즈비 건물과 건물에는 세계 에이즈의 날을 상징하는 큼직한 빨간 리본이 걸려있었다. 에이즈 보균율 10%, 아직까지 일부 지역에서 에이즈 환자를 산채로 매장하는 풍토가 남아있는 이곳에서 빨간 리본은 에이즈 예방의 희망보다 현실의 참혹함과 절박함의 표상이었다.

 

인근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온 의사가 운영하는 사설병원은 터무니없게 비싸 이용할 엄두조차 못 낸다고 한다.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려면 일 년치 월급을 꼬박 모아도 턱없이 부족하다니 말이다. 중환자를 치료할 의료기관도 전무한 실정, 매일 아침 호주 캔버라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뜨지만 15명의 환자선발은 질환의 위중함과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새벽부터 줄을 서더라도, 당장 수술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더라도 돈 있는 자의 입김에 밀려 며칠이고 뒤로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하여 의료봉사 당일에만 600명이 넘는 환자가 수녀원을 찾았다.

 

천혜의 자연은 자연스레 부족과 부족의 단절을 가져와 700여 민족과 언어를 탄생시켰다. 인류학자라면 파푸아뉴기니에서 한 번쯤 연구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과 원시성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 호주의 식민지배와 이후 부패정권의 수립으로 인해 괴기하게 변질되어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범죄가 창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병마와 굶주림, 범죄로 고통 받고 있지만 극소수 상류층의 생활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우리 배 맞은편 언덕에 들어선 집 한 달 월세가 수백수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빈부격차를 감히 짐작조차하기 힘들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파푸아뉴기니 국민의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마약에 절어 산다는 것이다. 환각성분이 들어있는 부아이라는 열매는 이곳에서 담배보다 더 인기가 많다. 씹으면 흘러나오는 빨간 액체에 입 안은 온통 시뻘겋게 착색되는데, 비극적이게도 이를 보고 일반국민과 상류층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한때 지상낙원이었던 파푸아뉴기니는 오늘날 생과 사가 하루하루 결정되는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불과 얼마 안 떨어진 두 나라의 극명한 대비에 놀랐고, 호주의 만행에 화가 났다. 범죄가 극렬한 파푸아뉴기니지만 호주인 만큼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식민지 시절 호주인의 잔혹함이 이곳 사람들의 뇌리 깊숙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참담한 파푸아뉴기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서구인은 거의 모든 자연을 대상으로 도륙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 중에는 동물은 물론 원주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주 동남쪽에 위치한 태즈매니아 섬에서는 태즈매니아 원주민과 태즈매니아 타이거라는 동물이 76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절멸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전쟁과는 분명 다른 성격을 지녔다. 서구인에게 원주민과 타이거는 그저 개척의 방해꾼이자 희귀한 동물로 보였던 것이다. 파푸아뉴기니를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선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20121228일 우리 배는 105일의 여정을 모두 마치고 모항 진해로 돌아왔다. 이전까지 나는 우리는 인간 이외의 존재를 위할 때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어느덧 3개월이 지난 오늘,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동물은 물론 같은 인간도 차별하고 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아름다움 뒤에는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여전히 빈부와 성 등 각종 차별로 시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물이 처한 환경이 바뀌길 바라는 건 과연 오만일. 동물이란 생명의 다른 이름의 모습들이 어떠한지, 또한 그들과 우리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일지 세상을 보고 돌아왔을 때 알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막막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래서 더 혼란스럽지만, 이 막막함과 혼란스러움이 다시 길을 만들어주리라는 희망은 더욱 또렷해졌다.

 

 

맨발의 아이들과 앙상하게 뼈만 남은 새끼 강아지에게서 파푸아뉴기니의 오늘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함박웃음은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하루빨리 이곳의 질병과 배고픔이 사라지길 바란다.

까리타스 수녀원에서 파푸아뉴기니 가족과 함께. 

의료봉사를 받기 위해 까리타스 수녀원을 방문한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파푸아뉴기니는 극심한 범죄 때문에 해외구호활동이 전무한 실정이라 우리가 방문했던 날의 의료봉사는 현지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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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의사 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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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22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멕시코 아카풀코의 휴양지에 정박한 한 작은 어선에 몸을 의탁한 채 자고 있는 고양이는 태평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병들고 굶주려 있었다. 어쩌면 녀석은 어부가 물고기를 잔뜩 잡아오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105일간의 세계동물조우기록 2.남미편

남미에서 동물은 사람과 함께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

 

미국에서의 시간을 뒤로 한 채 남미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북태평양을 건널 때와 달리 바다는 무척 잔잔했다. 기상담당관 말로는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수온이 올라가고 연안을 따라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바다를 대하는 우리 마음도 한층 여유로워졌다.

 

이후 기항한 멕시코와 콜롬비아, 페루, 칠레는 미국과는 모든 면에서 다른 국가였다. 마약과 내전, 가난과 정치적 암투로 점철되는 이들 국가의 역사는 남미 고유의 문화와 결합해 오늘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동물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낯설게 만들었다. 산업화된 사회의 시각에서 본다면 남미는 그저 이국적으로 보이거나 어쩌면 더럽고 저급하게 비춰질 수 있지만 나는 남미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을 느꼈다. , 이제 남미의 길에서 마주친 생명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날아든 손님

 

콜롬비아를 떠난 우리 배는 갈라파고스 제도와 남미 대륙 사이 바다에서 페루로 향하고 있었다. 갈라파고스! 지구상 얼마 남지 않은 천혜의 자연 보고를 이렇게 스쳐지나가다니, 아쉬움이 마구 밀려왔다. 하지만 올바른 목적 없는 방문은 개인의 욕심에 그칠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 터, 나는 갈라파고스 제도가 인간의 개입 없이 오랫동안 지금의, 아니 지금보다 더 풍성한 생태계를 유지하길 바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당시 나는 밤바다에 흠뻑 취해 있었다. 일몰 때면 간판에 올라 낮과 밤의 교차를 바라보곤 했다. 태양은 활활 타오르며 낮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밤은 어김없이 하늘을 잠식했다. 밤이면 뱃전을 때리며 흰 물보라와 무지개를 내보이던 파도는 오직 소리만 남았다. 도무지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어디까지가 배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갑판을 밝히는 불빛마저 미치지 못하는 은신처로 숨어들어 밤이 되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의관 김 연중 대위, 함수* 보고

(함수는 함, 즉 배의 선두갑판을 말합니다. 배의 갑판은 보통 함수갑판, 중갑판, 함미갑판으로 구성됩니다.)

 

함장님으로부터 호출.

함수라니, 대체 무슨 일일까.

 

우리 배에 온 손님이니 잘 치료해주게

 

함장님은 내게 한 마디 하시고는 함장실로 돌아가셨다. 손님? 치료? 웅성웅성 모인 사람들 가운데에 바다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날카로운 부리와 부리부리한 눈, 떡 벌어진 어깨를 지닌, 어디 해적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영락없는 대형 육식 새였다. 나는 우선 사람들부터 물렸다. 야생동물에게는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조차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물러가 고요해진 함수에서 녀석을 차근차근 살폈다.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변이나 다른 분비물은 모두 정상이었고, 부러지거나 뽑힌 날개깃도 없었다. 다소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건장한 몸으로 미루어 보아 오랫동안 아무 것도 못 먹고 지낸 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더 검사를 진행하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배에는 새를 위한 진단기기가 없었다. 나는 이틀 정도 차도를 지켜보기로 했다. 야생동물에게는 때로 안정이 최선의 치료인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한 채 성급히 치료하려 덤볐다간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었다. 개입의 필요가 분명해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허가 없이 함수로 들락거리지 말라고 전했다.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바닷새를 살리라는 함장님의 명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대화가 귓전에 울렸다.

 

굳이 치료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바다에 던져버리지 함장님도 참

 

그러게 말이야. 배에 괴질이라도 돌면 어쩌려고 말이야.”

 

나는 항변할 수 없었다.

오래부터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었기에…….

 

학부생 때부터 수의사란 한쪽에서는 동물을 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동물을 죽이는 직업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수의사는 철저히 이윤을 따져 소와 돼지 같은 산업동물의 생사를 결정하는가 하면, 같은 반려동물이라도 여러 사정에 따라 안락사를 권하기도 한다. 동물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동물 중에서도 반려동물, 그중에서도 자본에 따라 생명을 다르게 대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은 수의사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현실에 떠밀려 생명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부끄럽고 두려웠다. 처음에는 성경에서 나름의 정당성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창세기 말씀은 모든 생명을 위하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데, 사람들은 그저 함부로 동물을 사육하고 살육하며 지나치게 많은 육식을 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함수로 나갔다. 함수는 다른 갑판과 달리 피할 불빛조차 없다. 난간에 의지한 채 칠흑 같은 밤을 헤치고 바닷새 앞에 섰다. 사실 녀석이 그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따금씩 무언가 움직이는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나와 바닷새, 단둘뿐이었다. 아니, 하늘과 바다, 나도 녀석도 하나의 밤이었다.

 

다음 날, 바닷새는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잠깐 쉬었다 간 거였을까. 어쩌면 녀석은 이 배 저 배 옮겨가며 뱃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던져주는 꾼일지도 모른다. 지금쯤 녀석은 어디에 있을까? 잠시 잊고 있던 상념에 나를 빠뜨렸듯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지는 않을까? 한국에 돌아와 새를 잘 아는 선배 덕분에 녀석의 정체를 알았다.

 

바로 갈라파고스 제도에 서식하는 푸른발얼가니새였다.

 

멸종위기에 처한.

 

페루로 가는 길, 갈라파고스 제도와 남미 대륙 사이로 배가 항해하고 있을 때 함수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역삼각형 근육질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부리, 땅땅한 가슴팍의 이 새는 멸종위기에 처한 푸른발얼가니새였다.

 

페루의 리마, 사람과 동물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곳

 

우리 배는 어느덧 페루의 수도 리마에 기항했다. 입항 첫날, 나는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본 리마는 척박했다. 남태평양에서 밀려온 습한 대기와 거리를 가득 메운 낡은 차에서 피어오르는 매연은 한데 뒤섞여 회갈색 메마른 땅을 무겁게 내리깔고 있었다. 건물 하나하나는 남미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을 지니고 있었지만 가난의 매서움 때문일까, 산에서 바라본 리마는 오히려 흑백에 가까웠다. 리마 외곽은 더욱 참담했다. “리마 밖은 정말이지 사람과 동물 태어나는 게 구분 안 갈 정도로 못 산답니다다소 과장 섞인 말이라 여겼던 교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산을 내려가려는데 한 남자가 나를 멈춰 세우더니 손으로 목을 그으며 말했다. “자네들 이 시간에 걸어 내려가면 변을 당할 수 있어. 이 산은 리마와 외곽 빈민촌의 경계지역이라 범죄가 속출한다네. 기다리면 차가 올라올 테니 그걸 타고 가시게실제로 페루는 그랬다. 가난은 어김없이 범죄를 키워냈다. 그날에만 여럿 소매치기를 당했단다. 여행자가 단 하루 만에 이토록 여실히 가난을 체감할 정도인데 이곳 사람들에게 가난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쉬이 가늠할 수 없었다.

 

진해항을 떠난 이후 머릿속은 온통 동물로 가득했다. 연신 카메라에 동물을 담는 나를 볼 때마다 전에 남미에 와 봤던 치과 군의관은 연중이 남미 가면 정말 신나겠어. 남미는 사람 반 개 반이라는 말이 딱 맞는 곳이거든이라 말하곤 했다. 실제로 남미는 그랬다. 리마 거리는 사람뿐 아니라 개로도 북적였다. 그것도 대부분 고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큰 개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들어선 남미, 가난한 페루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한참을 돌아다닌 후에야 동물을 인지할 수 있었다. 개들은 너무도 자연스레 북적대는 군중 사이에 섞어 살고 있었다. 사람과 나란히 걸어가는, 함께 앉아 음식을 먹는, 떡하니 상점 앞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개는 이곳의 일상 풍경이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은 고국에도 흔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목격한 개는 반려동물이 아닌 길에서 살아가는 개다.

 

나는 언덕에서 내려와 대통령 궁과 리마 대성당이 위치한 아르마스 광장에 앉았다. 한 마리 개가 슬며시 다가와 나를 그윽이 바라보았다. 나도 녀석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마음속으로 같은 걸 물었다.

 

너에 대해 말해 줄 수 있겠니.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

 

이 질문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해 왔을까. 녀석들도 똑같이 우리에게 물어왔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이, 더 오랫동안 그래왔을지도. 거짓을 모르는 녀석들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기특한 마음에 녀석을 쓰다듬었다. 한데 두터운 털 사이 피부에 올록볼록한 뭔가가 가득했다. 진드기. 온 몸 구석구석 살 오른 기생충이 녀석을 점령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광장의 다른 개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대부분 병들고 굶주려 있었다. 리마에서처럼 거리에 개가 많은 환경은 기생충에게 그야말로 천국일 터. 녀석은 진드기가 야금야금 자신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걸 알고나 있을까? 아마도 왜 자신이 말라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이따금 가려움만 느끼며 평생을 살아왔겠지. 앙상한 숙주와 오동통한 기생충의 불쾌한 공존은 그곳의 일상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도 위협한다. 사실 예전에는 왜 수의학에서 인수공통감염병(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감염될 수 있는 감염성 질환)이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마에 들어선 나는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리마는 각종 인수공통감염병을 전달하는 이와 옴, 진드기와 같은 기생충이 거리의 수많은 개를 통해 아주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다. 더구나 동물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남미 사람들의 태연한 생활방식은 그 위험성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기생충이 가득한 개가 뒹군 풀밭에 누워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진드기를 하나하나 뜯어주는 사람도 있다. 바로 인수공통감염병이 기생충을, 그리고 다시 개를 매개로 사람을 감염시키는 형국. 고국에서 이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곁에 있는 군의관들은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위생관념이 없는 거야. 워낙 힘들게 사니 뭐가 위험한 건지도 모르는 거지하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내가 본 광경을 모두 설명하진 못한다.

 

문득 미국이 떠올랐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를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좋지 못한 무엇으로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 길고양이가 거리에서 나고 자랄 수 없도록 물과 음식, 보금자리를 제공하지 말자던 캘리포니아의 유기동물정책을 차갑게만 느꼈던 내가, 거리엔 헐벗은 동물 하나 없고 있다면 사람의 품에서만 살고 있는 아름다운(?) 미국의 모습에 씁쓸한 시선을 던졌던 내가 페루에선 도리어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개와 고양이가 자생한다는 게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다. 나 또한 극도로 산업화된 나라에서 자란 사람일 뿐이었기에.

 

출항 날 아침, 리마의 한 커피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나를 멈춰 세웠던 바로 그 남자였다. “여기서 자네를 만나다니! 아차, 그때 내 소개를 안했군. 나는 마르코, 여기는 내 아내와 자녀들이야. 나는 국영방송국에서 일한다네. 그날은 언덕 위성안테나에 문제가 생겨서 올라가 일하는 중이었어.세상 좁다는데 내 세상은 정말 좁은가 보다. 미국 톰 할아버지에 이어 페루 마르코라니. 나는 그에게 페루 동물을 보고 느낀 바를 말했다. 처음에 그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하긴, 그도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내 시선이 낯설었을 터. 마르코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가 말했다. “이미 리마에서 개들은 자생하기 시작한지 오래라네. 이는 아마 남미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리에게 개는 해코지할 대상도, 그렇다고 보듬어야할 대상도 아닌 그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네. 허허, 어찌 보면 자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거일수도 있겠지. 특히 위생관념에 있어서는 변해야할 부분이 많을 거야.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든 게 자연스럽다는 거지. 인위적인 건 하나도 없어. 사람과 개 모두 자기 나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라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머리로만 짐작할 수 있을 뿐,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인 마냥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내게는 페루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댔지만, 사실 무얼 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출항 후 사진을 돌아볼 때는 그 막막함이 더욱 짙어졌다. 그 중 마주침이라 이름붙인 사진이 있다. 산크리스토발 언덕 아래 노점의 한 노인과 개를 찍은 사진인데,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페루의 또 다른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때 묻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먹을 걸 바라는 개에게 '기다려, 내가 먼저 먹고 남은 걸 줄께. 지금은 안 돼'하는 동작을 취하는 노인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당시 나는 셔터를 누른 후 멍하니 그 둘을 바라봤다. 개와 노인 사이에는 서로를 잇는 무언의 끈이 있었다. 나는 지금껏 보지 못한, 결코 인위적이거나 계약적이지 않은 동물과 사람 사이의 오묘한 관계를 리마 골목골목에서 느꼈다. 그 중에는 마주침의 훈훈함과 달리 슬프거나 비참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내게는 그 순간 하나하나가 그립다. 분명 고국, 그리고 미국의 반려동물은 리마에서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도. 왜일까……. 막막함과 혼란을 고스란히 안은 채 우리 배는 칠레 발파라이소에 도착했다.

 

 

배고픔에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는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한다지만 역시 남미의 도심도 동물에게는 살아가기 적합한 곳이다. 하루빨리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개와 고양이는 본래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은 근거 없다! 남미에서 개와 고양이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사람과 동물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공격적이지 않다. 노력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이 개처럼 가려움에 제 몸을 물ㅇ뜯는 녀석이 한 둘이 아니다. 어디 피부뿐이랴, 그 속의 아픔은 더 클 것이다.

 

 

 

 

 

 

 

리마 시내에서 바라본 산크리스토발 언덕

산크리스토발 언덕 정상에서 바라본 리마 시내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동물과 마주하지만 그 마주침은 노상의 노인과 개의 그것과는 달리 대부분 차갑고 메말랐다.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마주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발파라이소는 골목도 많고 모퉁이도 많고 숨겨진 것도 많은 곳이다.

산동네에서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산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무엇을 못 먹고 무엇을 못 입는지 세상이 다 안다.

집집마다 내걸린 빨래와 끊임없이 늘어나는 맨발의 아이들은

벌집 같은 판자촌에서도 사랑이 식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칠레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의 하 대목

 

칠레의 발파라이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동네의 자유로운 생명들

 

칠레 수도 산티아고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발파라이소는 남태평양을 마주하는 해안산맥에 드넓게 펼쳐진, 어쩌면 그 아기자기한 소박함 때문에 도시보다는 산동네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곳이다. 해군기지를 비롯한 각종 금융·행정기관이 위치한 저지대와 달리 고지대 전역에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는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표현처럼 오래전부터 판잣집 가득한 빈민가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리마와는 왠지 모를 다른 느낌이 있는 곳이다. 다채로운 색과 개성 있는 낙서로 꾸며진 슬레이트 판잣집과 구불구불한 골목, 저지대와 고지대로 끊임없이 서민을 실어 나르는 케이블카는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동네로 만들었다.

 

시간의 털을 덮고

부싯돌처럼 껄끄러운 혀로

정열적이면서도 메마른 사랑을 나누며

고양이처럼 잠들고 싶어.

그리고 모두에게 비밀로 한 채

열정의 욕망으로

꿈속에서 쥐를 쫒기 위해

지붕과 풍경을 넘어

세상을 향해 몸을 활짝 젖히고 파.

 

-詩 <고양이의 꿈> 中, 파블로 네루다

 

나는 매일 아침 골목과 모퉁이 사이사이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섰다. 지금 돌이켜보면 네루다가 말한 보물은 아마도 고양이가 아닐까 싶다.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거나 우아한 몸짓으로 판잣집을 넘나드는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의 시간을 멈춘 범인은 바로 녀석들이 아닌가 싶었다. 네루다가 자신의 시 <고양이의 꿈>에서 말했듯 나는 어느새 고양이처럼 자고, 고양이처럼 꿈꾸고, 고양이에게 꿈을 맡기고 싶다는 꿈을 꾸며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오랜 동안 거리의 개와 고양이를 살피고 싶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나는 같은 골목, 같은 모퉁이에서 같은 개, 같은 고양이를 만났다. 사실 그렇게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녀석들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주민들은 이따금씩 문을 열어 거리에 밥을 내어 주거나, 집에 들이기도 했다. 심지어 집 밖으로 고양이를 내보내 동네 개들과 어울리게 하는 집도 있었다. 혼잡한 리마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에서는 개와 고양이는 물론 이를 바라보는 나조차 사람과 차에 치여 매순간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긴 리마뿐이랴…….

 

물론 터질 것만 같은 몸뚱이를 밖에 내놓은 채 머리를 피부에 박고 있는 진드기는 발파라이소에서도 흔한 존재다. 보살핌 받지 못하는 개와 고양이는 이곳에도 많다. 하지만 녀석들은 리마에서보다 조금 더 안정된 모습으로 하루하루 각자 나름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들을 대하는 주민들의 친근함은 반려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발파라이소 거리의 개와 고양이는 반려동물인 동시에 들개이며, 길고양이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로 어떤 개념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생명일지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거리의 개와 고양이를 대신할 말은 없을까. 반려동물처럼 모든 걸 포괄할 수 있는 단어 말이다. 그렇다면 반려동물이란 또 무어란 말인가. 우리는 개와 고양이에게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를 뜻하는 반려라는 이름표를 붙였지만, 아직까지 생명을 애완동물 취급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더 나아가 애완동물이나 반려동물이란 개념에 갇힌 채 생명과 생명이 놓인 환경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무책임하게 반려동물을 학대하거나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건 물론이거니와 반려동물만 위하고 고통 받는 다른 동물은 애써 외면하는 오늘, 우리는 인간 이외의 생명과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사고는 개념을 형성하고 그 개념은 다시금 사고를 강화한다. 비록 우리가 개념을 떠나 사고할 수 없다지만, 그렇기에 더욱 대상의 본질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그 대상이 생명일 때는 더더욱 말이다. 개와 고양이는 반려동물이기 이전에 우리 배에 기항했던 바닷새와 같은 동물이며, 동물이기 이전에 우리처럼 소중한 생명임을 우리는 서서히 잊고 살아간다.

 

남미에서 왜 이런 상념에 빠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거리에 수많은 개와 고양이가 자생하게 된 배경, 그런 녀석들을 대하는 그곳 사람들의 시선, 이로 인해 초래된 각종 문제들. 이들 하나하나는 페루와 칠레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고유의 결과물이며 앞으로 이들이 짊어지고 해결해 가야할 색이자 짐일 거다. 하지만 노인과 개의 마주침이 아직까지 내게 진한 여운을 남기는 건 왜일까. 나는 개와 고양이를 어떤 속박된 개념이 아닌 생명으로 바라보는 남미인의 시선을 안고 뉴질랜드를 향한 17일의 항해를 시작했다.

 

 

 

 

발파라이소 언덕을 가득 메운 오색찬란한 슬레이트 판잣집들은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그 아롱다롱한 색을 마구 발산한다. 또 골목과 모퉁이 사이사이에 저마다의보물을 숨기고 있다.

칠레 발파라이소의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쿨쿨 자고 있는 개. 카메라 셔터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더니 다시 잠든다. 늘어진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나도 잠이 밀려온다.

쿨~쿨~쿨~ 이번에는 세 녀석이다. 신선한 물이 담긴 물통이 눈에 들어온다. 저렇게 큰 개들이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내겐 낯설기만 하다. 위험한 동물이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홀짝홀짝 소방용 호스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는 고양이. 잠시 후 물을 기르러 온 아저씨는 멀찍이서 고양이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줬다.

아저씨가 자기에게 다가온 개를 쓰다듬더니 진드기를 하나하나 손으로 떼어주신다. 위생적으로 분명 좋지 못한 모습이 왜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아저씨처럼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싫었다.

서로를 그윽히 바라보는 개와 고양이. 웃기게도 고양이는 하반신 마네킹 위에 올라가 있다. 개의 시선은 마치 고양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듯하다.

칠레의 대표적 부촌인 비냐 델 마르 해변의 한 공사장이다. 개 두 마리가 잠시 공사가 멈춘 틈을 타 해변을 마구 누비고 있다. 녀석들,틀림없이 수영에 자신 있어서 저러겠지?

남미에서 노숙인과 개는 거리에서 함께 자고 먹고 행동했다. 사람도 동물도 거리에 내몰린 채 아픔 속에 살아간다. 다른 생명을 올바르게 마주하지 못할 때 결국 우리는 스스로도 위할 수 없지 않을까.

슬금슬금, 고양이를 한 번 만져보기 위해 다가가는 소녀의 몸동작이 마치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다! 고양이 녀석도 분명 소녀의 접근을 알고 있을 텐데,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 

성화를 바라보는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물이 함부로 다뤄지는 세상을 바꿔달라'고 하느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 이 고양이 좀 보세요! 작은 생명을 향한 순진무구한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지키고 위해야 할 소중한 보물이다.

새끼 강아지는 반려견일까, 아니면 길 위에서 태어난 개일까? 아무렴 어떠랴. 저 두 소녀처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이 가장 소중한걸. 이를 구분 짓는 내가 우습기만 하다.

해변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즉석에서 손질하는 아주머니 곁으로 개와 고양이가 몰려든다. 아주머니가 남은 생선 찌꺼기, 혹은 이따금씩 큼직한 덩어리를 던져줬는데 녀석들은 아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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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의사 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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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괭인 2013.04.11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도 글이지만 사진에서 연중님의 시선이 느껴져 참 좋습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따스하고 상냥한 느낌입니다. 남미의 햇살이 그러했나요? ^^
    도시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가끔은 동물들의 삶을 인간이, 인간의 삶을 도시가 결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어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함께 나란히, 사람과 동물 모두가 저마다의 행복과 건강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수의사 연중 2013.04.11 2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미의 햇살도 따스하지만,

      이곳 동물도 상냥하게 저를 대해 준 것도 있겠죠 ^^

      공감가는 말씀이세요.

      동물은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에 들어와

      소외된 삶을 살고 있지요...

      공존의 길을 우리가 어서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유기동물 책임입양해요 2013.04.15 1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다큐 한 편 본 것처럼 따스한 사랑이 느껴져요. 물론 연중님께선 안타까이 보이신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옛시절 모습과 다를바 없거나 아님 우리의 옛시절 보단 나은 모습으로 비춰지는 건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일까요? 그들의 사랑과 연중 님의 사랑도 멈추지 않길 바래봅니다

  3. 2014.03.08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소피스트 지니 2014.10.02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5. 2015.03.06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5일간의 세계동물조우 기록1

풋내기 수의사, 세상의 동물을 만나다 

샌프란시스코 서쪽 끝에 위치한 오션비치다. 이곳에서 마음껏 뛰노는 개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세상모르게 해수욕을 즐기는 개들과 녀석들을 향해 뛰어가는 소녀의 발걸음은 나로 하여금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 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1980년 김승옥

 

105일의 항해, 설렘 그리고 막막함

나는 20129월부터 12월까지 배를 타고 태평양 연안 10개국을 방문했다. “수의사가 배를 왜 타()?” 여정을 시작하기 전, 여정 동안,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질문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하긴, 어쩔 땐 나 자신한테도 물을 정도였으니. 사실 수의사는 사회에서 동물 진료뿐 아니라 예방, 검역, 방역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한다. 외국 항구에 입항할 때 선박은 위험한 질병이나 외래 동식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철저한 검역을 받는데, 군에서 수의장교로 복무 중인 나는 항해기간 동안 우리 배 검역요원으로 편승했다.

 

평소 동물 진료에만 관심을 가졌던 내게 이번 항해는 검역이란 수의사의 또 다른 중요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북태평양을 건너 미국,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 그리고 다시 남태평양을 건너 뉴질랜드, 호주, 파푸아뉴기니, 중국을 볼 수 있다니. 비록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육지에서보다 많았지만 소위 선진국에서 최빈국까지 각 대륙을 하나의 여정에 언제 또 담을 수 있을까 싶었다.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세상을 두루 돌아보면 마치 삶을 명료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삶의 장대한 무엇은 아니라도 좋았다. 다만 인간 이외의 존재, 동물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에 대해서라도 모습을 본다면 동물이란 존재가 그들 스스로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서로 간의 올바른 관계는 무엇일지, 모든 여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본 세상은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이고 내게 남은 건 막막함뿐이다.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후, 이런 내 혼란스러운 심경을 한 교수님께 털어놓았다. 그는 나의 막막함이 세상에 어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했다. 정답이라……. 어쩌면 동물이란 정해진 어떤 관념 안에 포함시킬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나는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천천히 되짚어 보니 그 막막함을 이루는 경험들이 좀 더 명료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서로 융합될 수 없는 고유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제 지난 여정의 막막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비록 정답은 구할 수 없더라도 함께 고민하는 이 시간이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의 한 공원에서 만난 아저씨와 세 개님. 세 아이 모두 유기동물보호소 출신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지 낯선 내가 다가오니 약간 경계를 했다. 애들아, 더 이상 상처받지 마렴.

스파링이라도 뜨듯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하하, 사실 현장 분위기는 정겹기 그지 없었다. 이 두 개님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 표정을 한 번 보라. 마음 한 켠에 쉼표를 둔 다는 건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 아닐까?샌프란시스코 오션비치 입구에서 마주친 해맑은 소녀와 개. 고백하자면 나는 개보다 소녀에게 마음이 끌렸다. 어찌나 웃는 모습이 예쁘던지, 사진을 형들에게 보여줬더니 모두 입을 모아 "딱 네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하하~

히피문화의 발원지 애쉬베리 헤이츠에서 만난 훈남 청년과 개님. 둘은 대중교통만을 이용해 미국 전역을 여행 중이란다. 청년도 개님도 오랜 여행 끝에 다소 지쳐 보였지만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기에 든든해 보였다.

경전철 안에서 만난 아주머니와 엘리스. 엘리스의 눈물관이 막혀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오는 길이란다. 한국과 달리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목줄만 하면 큰 개 작은 개 할 거 없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삼총사. 처음에는 정말이지 인형인 줄 알았다. 떡하니 담요까지 깔아놓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말 그대로 사람 구경을 하다니. 녀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항상 동시에 시선을 옮겼는데, 금방이라도 랩이 튀어나올 기세다! ㅋㅋ

베니스 비치에서 만난 남자와 그의 반려견. 사진을 찍고 싶다 하니 흔쾌히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웬걸, 돌아서는 나를 붙잡더니 험악한 표정으로 돈을 달란다. 허겁지겁 주머니를 털어 지폐 몇 장을 건네니 웃자고 한 소리란다. '이봐, 나는 정말 무서웠단 말이야!'

 

 

 

개들의 천국 두보세 공원(Duboce Park)

우리 배는 북태평양을 건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배에서의 지난 13. 바다는 대기와 수심, 조류 등 다양한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매순간 각양각색의 모습을 내게 보였다. 겨울을 목전에 둔 바다는 잠잠하지 않았다. 2~5m의 너울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 배를 좌우로 뒤흔들었다. 동해를 빠져나갈 땐 마침 한국을 강타한 16호 태풍 산바의 심술이 러시아까지 미쳐 갑판으로 나가는 모든 문이 폐쇄될 정도였다. 열에 아홉은 귀 밑에 키미테를 붙이고 있었고, 의무실은 이마저도 소용없다며 먹는 약 좀 달라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다행히도 나는 남들만큼 멀미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혹여나 오밤중에 침대 밑으로 떨어지진 않을까 밤잠을 설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높은 너울 사이로 슬며시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 돌고래, 물살을 헤치는 배에 놀라 멀리 날아 도망가는 날치 친구들, 끝없는 수평선을 무대로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 그리고 밤하늘을 밝히는 은하수의 향연이 없었다면 이미 지쳐버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배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드디어 미국에 도착했다. 2주 만에 뱃사람이 다 된 걸까. 육지에 내린다는 게 선뜻 실감나질 않았다. 그것도 저 넓디넓은 태평양 너머 미국이라니. 저 멀리 해무 사이로 적갈색 땅이 점차 또렷이 시야에 들어오고, 미국의 관문이라 불리는 금문교 바로 아래를 지날 때에야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정말 내가 태평양을 건넜구나!’

 

입항 둘째 날, 군의관 형 두 명과 함께 아침 일찍 배를 나섰다. 목적지는 히피문화의 발원지라 불리는 애쉬베리 헤이츠(Ashbury Heights).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히피문화에 관심도, 아는 바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를 일찌감치 파악한 형들은 그곳에 가면 동물이 옷을 입고 사람은 벗고 다닌다더라!”며 꼬드겼고, 결국 나는 속는 셈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내려 애쉬베리 헤이츠로 걷던 중 주택들 사이의 아담한 공원에 들어서자 한국의 도심에선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개 여럿이 자유롭게 드넓은 풀밭에서 뛰놀고 있는 게 아닌가. 보호자가 던진 공을 있는 힘껏 달려 물어오는, 서로 어울려 세상모르게 뒹구는, 처음 만난 친구를 탐색하는 녀석 등 모두가 본연의 습성을 마구 분출하고 있었다. 한 컷 한 컷, 한국에 이 모습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함께 온 형들은 벤치에 앉아 내게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연중이 완전 물 만났네. 그러게 형들만 따라오면 된다니까!” 그들 눈엔 나도 개들도 신이나 보였나 보다.

 

문득 한국의 반려동물이 생각났다. 하루 온종일 실내에서 지내야 하는 그들에게 자유는 없다. 공원에 가더라도 항상 목줄에 매여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집에서조차 함께 지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성대나 발톱을 제거하기도 한다. 문제는 오늘의 상황이 급격한 산업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의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제도적 접근만으로는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사람과 동물 모두를 위한 가치를 품을 수 있는 중요한 기점에 서 있는데, 나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목소리를 내야할지 몰랐다. 그렇기에 이처럼 동물이 자유롭게 뛰노는 풍경이 한없이 부러웠다.

 

자네, 여기 사람 아니지?” 70세는 훌쩍 넘어 뵈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내게 묻는다. 그의 왼손엔 전자책, 오른손엔 빈 목줄이 들려있다. “, 한국에서 군함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왔습니다.” 군함이란 말에 할아버지는 흠칫 놀란 기색이다. “그럼 직업군인인가?” “아니요. 수의사입니다.” 그는 수의사란 말에 다시 놀란다. 그리곤 수의사가 왜 배를 탔지?”하고 묻는다. 노인과 젊은이의 대화는 그렇게 이어졌다. “할아버지, 저 개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흐뭇해요. 한국에는 이런 공원이 없답니다. 밖이면 항상 목줄에 매여 있어야 해요.” 그는 말했다. “이 공원은 사실 주민들의 양보 끝에 만들어진 거야. 이전엔 개를 멀리하는 주민과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픈 주민 사이에 깊은 갈등이 있었어. 다행히도 한 걸음씩 물러선 덕에 모두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되었지. 바로 이 지역 공원들을 개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원과 아예 들어갈 수 없는 공원, 그리고 꼭 목줄을 해야만 하는 공원으로 나누기로 한 거야. 그런데, 한국 반려동물 삶은 이곳과 많이 다른가?”

 

양보……. 친숙하면서도 이제는 낯선 단어……. 양보는 바로 우리의 미덕이 아니었던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을 터인데,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는 선례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아파트에 많이 살기 때문에 작은 개를 많이 키워요.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이곳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이곳 풍경이 제게는 사실 대단히 낯설답니다. 한국의 반려동물도 저들처럼 자유롭고 싶을 텐데……. 공원에서 친구 개를 만날 때조차 녀석들은 목 뒤로 조여 오는 긴장감을 느껴야 해요.” 우리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멀리서 새하얀 스코티시 테리어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우리 사이에 섰다. “요놈은 Gidget이라네. , 나는 Tom Burtch. 요놈 간식 먹으러 갈 시간이라 이만 가봐야겠어. 남은 항해에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네. Gidget, 갈까?”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고삐 풀린 개님의 모습은 나를 절로 미소짓게 한다. 뛰는 개님도, 보는 나도 행복하다. 실내에만 속박된, 목줄에 매인 삶은 어떤 생명에게든 옳은 삶의 행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이라도 본연의 본성을 표현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두보세 공원은 개가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공원과 꼭 목줄을 해야하는 공원, 그리고 동물이 들어갈 수 없는 공원으로 나뉘어 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이를 가능케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공원을 찾을 때 지켜야할 사항을 세세히 적어놓은 공원 안내판을 보노라면 미국의 지역사회가 공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동물을 반려한다는 것

입항 다섯 째날, 나는 샌프란시스코 동물보호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사흘 동안 많은 반려동물을 만났지만 유기동물은 단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길고양이 하나 눈에 안 띌 수가 있지?’ 나는 동물보호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동물보호소가 문 열기 전 남는 시간을 두보세 공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하염없이 뛰노는 개들이 다시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Tom 할아버지와 나눈 짧은 대화가 남긴 여운 때문이었다. ‘연락처라도 주고받을 걸. 뭔가 정이 느껴지는 분이었는데공원엔 역시나 아침부터 많은 개들이 보호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엔 할아버지와 Gidget도 있었다.

 

또 만났구려. 나는 Gidget과 항상 이 시간에 산책한다네. 그래, 오늘은 어디로 가려는가?” 자상하기도 하셔라.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SPCA(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미국의 대표적 동물보호단체)에 가려 합니다. 할아버지, 제가 Gidget과 함께 사진 찍어드릴까요? 나중에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할아버지와 Gidget은 흔쾌히 포즈를 취했다. “찰칵!”

 

샌프란시스코 SPCA는 정말 훌륭한 곳이라네. 구조된 아이들 모두 안락한 시설에서 지낼 뿐 아니라 훌륭한 의료진까지 갖추고 있다네. 자원봉사자도 아주 많아서 반려동물 입양, 교육, 치료 등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어. 자네 같은 사람은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건 어떤가. 두 시간 후 Gidget 건강검진이 있는데 자네만 좋다면 잠시 우리 집에서 목 좀 축이고 함께 동물병원에 가자고. 그곳 수의사랑 각별한 사이라 병원구경에 면담까지 주선해 주겠네. 동물보호소엔 그 후에 내가 데려다 주지!” 오늘은 출항일이라 점심 이후엔 배로 복귀해야 해 할아버지 계획대로라면 동물보호소 방문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처럼 따뜻한 호의를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와 함께 길을 나섰다.

 

공원을 떠나 10분 쯤 걸었을까. 할아버지는 여기서 잠깐 Gidget 간식 좀 받아가세하며 Gidget의 목줄을 풀었다. 그러자 Gidget이 곧장 동네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자리를 잡더니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주인아저씨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푸근한 인상의 주인아저씨는 그래, Gidget 왔구나. Tom, 오늘이 요놈 검진일이죠? 이번에도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하며 Gidget에게 비스킷 하나를 주신다. 그렇다. 그들은 매일 아침 오늘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Tom 할아버지, Gidget, 주인아저씨는 서로를 반려하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할아버지 집은 빅토리아 양식의 고풍스런 외관을 자랑하는 주택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찬찬히 집 구경을 시켜주셨다.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3층 테라스에 위치한 욕조였다. 겨울이면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저 멀리 금문교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곤 한단다. 지금은 은퇴하고 여러 가지 소일거리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네. 요즘은 게이역사박물관(Gay History Museum)에 틈틈이 나가고 있어. 시간만 되면 자네에게 구경시켜 주고 싶네만, 오늘 배가 떠난다니 어쩔 수 없지. 대신 다음에 올 땐 꼭 들려야 하네!”

 

집안 구경을 하는 동안 Gidget은 마치 자기가 안주인이라도 되는 듯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했다. 소박한 뒤뜰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리로 통하는 문 귀퉁이엔 Gidget이 드나들 수 있는 쪽문이 나 있었다. ‘부럽다. 우리 집 개, 고양이도 이렇게 자유롭게 해줘야 하는데집에는 스코티시 테리어 사진이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1978년부터 다섯 마리의 스코티시 테리어와 반려했다. Eunice, Franklin, Eleanor, Noddy, 그리고 Gidget. 할아버지는 한 녀석 한 녀석과 함께한 추억을 내게 나눴다. 지난 35년을 돌아보는 그의 눈엔 기쁨과 슬픔이 함께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Noddy의 사진에 적힌 구절을 이곳에 옮겨 본다. ‘Noddy has left the neighborhood. July 15, 1992 to January 14, 2009. Sixteen and a half years of memories’

 

잠시 후 우리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Gidget의 주치의는 병원을 구경시켜주며 내 질문에 하나하나 성심껏 답해주었다. 사실 시설이나 운영 면에선 한국의 동물병원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수의사, 간호사, 보호자 모두가 동물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로 그날의 일이다. Gidget의 심박, 호흡 수, 체온 등 모든 기본검진이 문제없이 끝났고 이제 예방접종만 남았다. 하지만 녀석은 유난히도 주사 맞는 걸 싫어했다. 낯선 사람들, 다른 개와 고양이 냄새, 온갖 약품 냄새에 둘러싸인 Gidget은 대번에 공포의 그날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주사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아이들은 대게 어떻게든 토닥여 후딱 주사하는 게 내게 익숙한 풍경인데, 이곳에선 20분이 넘도록 Gidget 스스로 긴장을 풀도록 차분히 기다리는 게 아닌가. ‘좋은 수의사는 동물에게 말을 하지만, 훌륭한 수의사는 먼저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수의사 사이의 속담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각박한 도심 인심에 동물을 위하는 마음까지 메마르고 있는 오늘, 서둘러 주사를 놓기보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많이 불안하지? 편해지면 말해주려무나라며 동물을 생명으로 배려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왜 하필 출항 날이 되서야 할아버지와 친해진 걸까. 더욱 많은 걸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것도 우리의 인연. 앞으로 또 다른 시간을 함께하길 바랄뿐이다. 그는 게이의 고향, 카스트로 거리에서 날 내려주었다.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악수, 떠나가는 나를 응시하던 Gidget의 눈에 깃든 따스함을 안은 채 나는 두 번째 기항지인 LA로 향했다.

 

 

 

 

출항 날 다시 찾은 두보세 공원에서 나는 Tom 할아버지, Gidget과 재회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제가 Gidget과 함께 사진 찍어드릴까요?"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기뻐하며 Gidget과 포즈를 취하셨다.

Tom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목줄을 풀자 Gidget은 뒤뚱대며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 주인아저씨 앞에 앉아 거절할 수 없는 눈빛을 보냈다. 주인아저씨가 못 이기는 척 비스킷을 건네자 Gidget은 어울리지 않는 날랜 몸동작으로 냉큼 받아먹었다. 서로 반려한다는 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Tom 할아버지의 집 안 곳곳에서 그와 함께한 다섯 아이의 따스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Noddy의 액자부터 Gidget의 사진이 들어간 텀블러까지.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녀석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 온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동물병원 처치실이다. Gidget의 주치의는 병원을 구경시켜주며 내 궁금증을 하나하나 해소시켜줬다. 시설 면에선 한국 동물병원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수의사와 수의 간호사의 손길에서 동물을 배려하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1900 Built' 바로 샌프란시스코 동물병원이 문을 연 해다. 무려 113년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아마 한국에선 이처럼 역사 깊은 사람 병원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액자 안에는 대대로 이 병원을 맡아온 수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풍요롭지만 차가운, 미국의 유기동물정책

LA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나는 지난 시간을 정리했다.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반려동물과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했다. LA를 목전에 앞둔 내 마음은 이제 동물보호소로 향했다. ‘Tom 할아버지 말처럼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거야입항 둘째 날, 나는 SPCA LA지부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차가운 모순과 마주하고 말았다. 이는 바로 길고양이로부터 물, 음식, 보금자리를 제거하자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유기동물정책. 그토록 진정으로 동물을 반려하는 미국에서 도리어 이런 정책을 장려하고 있다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들떴던, 따스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다. 미국인은 보호자의 반려 없는, 길에서의 개와 고양이 삶을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좋지 못한 무엇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보호자와 함께하는 반려동물이 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모습이다. 모든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란 범주에 밀어 넣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길고양이를 향한 차가운 정책으로 나타났다. 우선 길고양이를 다시 길 잃은 고양이(Stray Cats)’야생고양이(Feral Cats)’라는 범주로 구분해버렸다. 길 잃은 고양이는 가정에서 살던 고양이로 우리가 구하고 보호해줘야 할 무엇, 즉 반려동물로 살아가야할 존재다. 야생고양이는 길에서 나고 자란 고양이로, 사람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 음식, 보금자리를 제거함으로써 길에서 고양이가 번식할 기회를 억제하자는 게 이곳 유기동물정책의 요체. 바로 오늘의 아픔을 감수한다면 훗날 길에서 고통 받을 수많은 고양이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로 무장한 것이다.

 

미국에 머문 지난 열흘 동안 좀처럼 유기동물을 만날 수 없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같은 동물을 그렇게 구분지어 버리다니. 하지만 어찌 고양이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동물이 반려동물, 야생동물, 산업동물 등으로 구분돼 우리 인간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도 판이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반려되고, 보호되고, 죽임 당한다. 내게 LA 유기동물정책의 성공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특히 생명의 문제를 그렇게 다룬다는 건 더욱 공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모순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난다. 한국에 돌아온 후 20131, 다름 아닌 우리 집에서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부모님 댁에 살던 고양이 소중이가 어릴 적 자유로이 집밖을 오가며 살던 시절이 그리웠는지 집을 나가고 만 것이다. 주말 내내 동네를 쑤시고 다니고, 전단지를 붙였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근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포항으로 내려가야 했고, 소중이 찾기는 부모님 몫이 되었다. 그러던 3일 후,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전단지 속 사진이랑 똑같은 고양이가 요 앞에 자주 지나다녀요.어머니는 당장 그곳을 샅샅이 뒤졌다. 이윽고 내게 온 답장은 다음과 같다. “연중아, 소중이가 아니야. 얼마 전부터 엄마가 소중이 돌아오라고 동네 곳곳에 캔 사료를 뒀는데, 한 새끼 고양이가 매번 그걸 먹더라. 주민이 말한 고양이도 그 아이인 것 같아.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중이가 반려동물, 아니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행동은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반려동물로 살아온 소중이, 녀석을 위한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새끼 길고양이. 모두가 고양이이며, 동물이고, 생명이지 않은가. 소중인 5일 뒤 새벽녘 스스로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기쁜 마음에 잠도 잊은 채 녀석을 씻기고 먹였다. 하지만 다음날 해질녘, 당신께서 내게 보낸 문자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 캔 사료 들고 다시 나가보려고. 자꾸 그 새끼 고양이가 눈에 밟히네. 삶이 참 그렇다? 누구는 집안에서 따뜻하게 배불리 살아가고, 또 누구는 헐벗고 병든 채 사람 눈치 봐가며 살아가고.”

 

 

동물보호소를 떠나 배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릿속은 보는 이를 절로 미소 짓게 하는 Tom 할아버지와 Gidget, 야생고양이로 몰려 배고픔에 메마른 거리에서 사라졌을 고양이의 잔상으로 뒤섞였다.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와 동물 사이엔 어떠한 정답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물을 우리의 수단 이전에 생명 그 자체로 바라보는 마음은 어느 문화, 어느 세대에서나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 속에 존재하듯, 인간은 인간 이외의 존재와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막막함을 안은 채 미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지닌 남미로 향하는 배에 나는 몸을 실었다.

 

 

 

 

▲LA 유기동물보호소는 크게 입양, 신고, 교육 센터로 나뉜다. 든든한 후원과 풍족한 자원봉사자가 있고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된 덕에 이곳에 들어온 유기동물은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 한 가지 부러웠던 건, 입양, 교육 센터뿐만 아니라 신고센터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는 것. 반려동물등록제가 정작되어 있어 반려동물을 잃어버리더라도 유기동물보호소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LA 유기동물보호소 내 고양이 생활공간. 건강을 회복한 고양이는 격리실을 벗어나 이곳에서 생활한다. 안락하고 넓은 공간, 고양이 습성을 고려한 다양한 설치물 등에서 세세한 배려가 엿보인다. 유기동물을 입양하고자 하는 보호자는 이 방에 들어와 직접 고양이를 만나보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입양과 교육이 자연스레 함께 이뤄지는 것이다.

미국의 한 가정집 창문에 붙어있는 전단지. Moto에게 행복한 삶은 과연 무엇일까? Moto는 지금쯤 집으로 돌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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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의사 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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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기동물 책임입양해요 2013.04.08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아름다운 글과 풍경을 연중님덕분에 보게 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소중이를 잃어버렸대서 조마조마했는데, 무사귀가하여 참 다행이네요

    • 수의사 연중 2013.04.08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게 되다니 ㅎㅎㅎ 2월호는 다소 아름다운 사진일지 몰라도... 3월과 4월호는 슬프게도 그렇지 않답니다...^^;; 다음 호도 꼭 읽어 주세요. 소중이 녀석 집에 돌아와 반달이와 아웅다웅 잘 살고 있답니다 !!

 

 

 

배는 어느덧 일본해협을 지나 태평양에 접어들었다. 해협 양 옆으로 펼쳐진 섬들은 정말이지 끝없이 이어졌는데, 나는 함미 갑판에서 이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일본이 크긴 큰 나라구나라며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섬들도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지만 바다 새 몇 마리는 여전히 주위를 빙빙 돌며 우리가 아직 대양에 들어서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이제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는 꼬13일을 가야한다. 진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해협까지 다시 이틀이 걸렸는데, 앞으로 13일을 더 가야 한다니.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준비해 온 책을 모두 읽고도 남을 시간일 수도, 아니면 두어 권의 책을 읽기에도 턱없이 부족할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잠시 이번 여정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 블로그에 올린 어떤 글을 되짚어 보려 한다. 아니, 시인하는 글이라고나 해야 할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큰 오류를 범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를 깨달은 것은 출항 얼마 전이었다. 아니, 어쩌면 글을 공개한 직후였을지도 모르겠다(직감에 따르면). ‘고쳐야지, 고쳐야지하는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계속 들었지만, 그 글 자체가 어떤 주제를 바라보는 나의 당시 사고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생각에 쉽사리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고친다는 것 자체가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그 글에는 손대지 않고 오늘 글로 대신하려 한다.

 

문제의 글은 바로 개를 먹는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짧은 칼럼이다. 다음은 그 글의 일부다.

 

 

   종차별은 인간과 동물 사이뿐만 아니라, 동물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우리는 인간 이외의 동물을 산업동물, 실험동물, 반려동물, 위해동물, 멸종위기동물 등 수많은 단위로 구분한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얼마나 작위적인지, 모든 동물 하나하나가 동등한 기본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동물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지켜야 할지, 죽여야 할지 등을 결정한다. 어느새 인간은 지구에서 신으로 군림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구, 즉 반려동물이기 때문에 개를 먹어선 안 된다는 주장은 더 이상 내게 설득력이 없다. 누가 감히 우리에게 개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말할 권리를 주었는가. 물론 개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동반자였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만으로 반려동물이라는 구분 속에 개를 포함시켜 다른 동물과 달리 특별히 보호받을 권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개를 먹지 말자고 주장할 때 우리가 만든 이 [구분]지어진 세계의 본질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 만든 덫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듯 나는 종차별은 결국 모든 종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 사이에서의 차별,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동물과 동물 사이에서의 차별은 결국 하나의 종차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작위적인 기준으로 동물을 구분하고 이 구분지어진 범주를 바탕으로 동물을 향한 우리 태도를 결정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인간 아닌 동물에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의 기준이 예전부터 공존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정해졌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인위적이며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태평양 일주를 시작하며 한 가지 품은 기대가 있다면 바로 바다에서 돌고래를 만나는 것이다. 선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로 돌고래 무리가 큰 배를 따라와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잠수함을 찾아내기 위한 음탐시험을 할 때면 어느새 배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 수 Km를 함께 일주하곤 하는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갑자기 웬 고래 이야기를 했을까? 바로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함께하기 상대적으로 편한 개, 고양이 등 이외의 살아있는 동물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철저히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오늘 식탁에 오른 고기, 즉 동물이 어떻게 길러졌고 죽임을 당했는지조차 모르지 않은가(안다고? 당신이 아는 건 거대축산업이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우유 포장지에 그려진 평화로운 초원은 오늘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소, 돼지와 같은 동물과 함께 살아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의사로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이들도 소위 반려동물이라는 개, 고양이와 다름없이 풍부한 감성을 가진 생명이라는 것이다. 경험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위의 고래 이야기도 선원에게 전해 들어 간접적으로 느낄 뿐이지 내가 돌고래의 풍부한 감성을 느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결국 개가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이는 다른 이들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개와 가까이서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단지 다른 동물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고 그들이 풍부한 감성이 없는 동물이라곤 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와 정서적 교감을 못하는 상황을 사냥하거나, 먹어도 된다는 근거로 이용하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인간답지 못한 행동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내 생각은 처음 개를 먹는다는 것글을 쓸 때와 다름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다음에 있다.

 

  [가축]이라는 말도 위에서 언급한 구분의 덫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는 그나마 작위적이지는 않다. 산업동물과 가축 모두 재화의 가치를 지닌 동물을 의미하지만, 내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산업동물에서 동물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닌 공장형사육의 소모재로 존재할 뿐이다.

 

  그 과정이야 어찌됐든 육식의 필연성으로 인한 일부 동물의 가축화는 인간의 파괴성에 큰 억제력을 행사해 왔다. 이는 대한민국과 같이 산업화가 진전된 국가에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한데, 바로 육식의 필연성보다는 단지 심미적 목적만을 위해 동물이 도살되는 경향이 이러한 곳에서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축]의 관념은 바로 우리가 지켜야할 윤리적 한계를 설정한다. 나는 그 한계선에 위치한 동물이 개, , 고래, 고양이 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를 먹는 걸 찬성하는 사람들은 흔히 심미적 목적 이외에 고유문화를 들먹이곤 하는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보릿고개 시절 함께하던 가치는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소위 정력에 좋다는 지극히 비과학적 기호로 변질된 지 오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먼저 개를 먹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정한 후 그 이유를 찾았던 게 아닌가 싶다. 정반대로 사고가 이어져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육식의 필연성으로 인해 가축이란 범주가 형성되었고 바로 이를 통해 인간의 윤리적 한계를 정할 수 있다는 논리는 그나마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축의 범주 바로 밖에 개, , 고래, 고양이를 위치시키다니! 이처럼 작위적인 기준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글의 도입부에서 이러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기준이 동물과 동물 사이에서의 종차별을 초래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임을 지적하면서 후반부에선 이를 내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만 것이다.

 

처음 개를 먹는다는 것을 소개했을 때 반응은 다소 뜨거웠다. 평소 개를 먹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감사하게도(지금은 민망하게도) 글을 이곳저곳에 날라주었다. 하지만 이 분들 중 일부(정말 일부) 또한 어쩌면 나처럼 개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이미 마음에 정해놓고 이를 지지하는 글의 등장에 비판 없이 환영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사실 든다. 이러한 사고는 논리적으로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초래한 논리적 오류를 시인하고 나니 속이 한결 후련하다. 나는 다른 어떤 논리를 피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 개를 먹지 말아야 할 논리적 이유는 글로 표현할 만큼 내 마음에 확고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개를 먹는다는 것의 오류를 인정한 후부터 더욱 조심스러워졌을지도). 처음부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개를 먹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정해 놓지 않고 무에서 시작해 어떤 논리적 귀결에 이르는지 말이다. 내가 즐겨하는 말 중에 가치판단엔 해답이 없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지만 논쟁을 피해가는 데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오늘도 이 말로 몸을 숨겨보려 한다.

 

어쩌면 개는 먹고 말고의 대상이 아닐지도. 이렇게 오랜 세월 논쟁거리가 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어떤 선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건 아닐까(희망사항). 에라, 모르겠다, 정말. 내일이면 항해 7일째, 그저 빨리 돌고래와 조우하길 바랄 뿐이다.

 

2012/08/14 - [동물복지] - 개를 먹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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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04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항해 11일째. 우리 배는 예정된 항로에서 발달 중인 불안정한 저기압 대를 피해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항해나 작전 관련 병과가 아닌 나로선 이러한 정보를 귀동냥으로 알 수밖에 없는데, 오늘은 우연찮게 기상현황판의 위성사진을 보고 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위성사진에서 우리 배의 위치뿐만 아니라 한 가지 흥미로운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미드웨이Midway. 미드웨이 해전이 일어났던 그 곳을 지나가다니, 기분이 묘했다.

 

오늘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인간과 개,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동물이 어떠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특히 극도로 도시화된 환경에서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려 한다. 이는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지극히 예민한 주제인데, 그럴수록 수면 위로 끄집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문제를 바로 직면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근원적 두려움 혹은 무관심은 실제 개개인의 마음속 깊은 곳 갈등의 증거가 아닐까.

 

먼저 나와 함께하고 있는 반려동물을 소개함이 순서일 듯하다. 그들을 만나게 된 경위, 그들과 함께하면서 내가 초래한, 겪고 있는 무책임한 행동과 어려움을 솔직히 고백해야 이번 글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정직하고 옳은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눈으로 다른 반려동물도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개개인의 소소한 경험이 곧 어떤 대상을 향한 관념을 형성한다. 그들은 곧 이 글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다.

 

나에겐 2살 남짓 된 고양이 소중, 이제 겨우 6개월을 넘어가고 있는 개 반달이가 있다. 소중은 2011년 겨울, 포항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근무지 내() 일명 사고팔기 게시판에선 하루에도 수십 건씩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곳엔 바깥 사회와 으레 마찬가지로 가끔씩 개나 고양이도 상품으로 등록되곤 했는데, 부분 입양한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었다. 아마도 이동이 잦은 직업 특수성이 초래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소중이도 바로 그 중 하나였다. 소중이 거래글을 보자 문득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다. 바로 수의대 생활 내내 수도 없이 들어온 말.

 

   ‘고양이와 함께하지 못한 수의사는 고양이를 다루는 데 서툴 수밖에 없어. 고양이 집사는 이를 대번에 알아채지. 네가 고양이를 이해하려면 꼭 함께 살아봐야 해. 의학책만 들춰봐서는 분명 한계가 있으니. 고양이는 바로 그런 존재야.’

 

왜 그 동안 다른 고양이 거래 글을 보았을 때 위와 같은 충동이 들지 않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니, 충동뿐 아니라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때는 그저 더 이상 늦기 전에 고양이를 키워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다짜고짜 나는 글을 올린 사람에게 연락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곧 그에게서 사진이 도착했다. 샴 블루 포인트Siamese Blue Points였다.

 

 

 

 

샴 고양이Siamese Cats와는 조금 다른 아이였다. 얼굴과 사지, 꼬리의 무늬는 다소 짙은 회색빛을 띄었고, 눈은 푸른색. 온몸에서 귀티가 흘렀다. 다소 새침한듯하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그런 아이였다. 만약 길고양이나 내 눈에 볼품없는 품종의 고양이였다면 당시 마음을 어떻게 먹었을지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그 당시 나는 생명을 두고 품종이나 따지던 사람에 불과했으니. 바로 그 주에 나는 소중이가 있는 포항으로 향했다. 앞뒤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봐야만 하는 수의사였고, 더욱이 그 고양이는 그 어떤 녀석보다도 멋졌다. 바로 구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단돈 30만원에 나는 소중이란 한 생명을 덥석 버렸다.

 

녀석과 함께한 시간은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소중과 함께함에 있어 수의장교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했는데, 그 덕에 우리는 항상 붙어 지낼 수 있었다(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잠시나마 항상 함께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건물은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고작해야 4명뿐이었고 건물 주위엔 차나 사람의 왕래가 무척 적었다. 우거진 산림 속에 턱하니 방치된 2층짜리 도시건물이랄까, 도시나 시골이라고 표현하기엔 뭔가 애매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은 고양이가 살아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사무실은 2층에 위치했는데, 처음에 나는 소중이가 밖으로 나가는 걸 철저히 통제했다. 항상 문과 창을 닫은 채 생활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어떤 전염병에 감염될 가능성보다는 혹여나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이는 순전히 고양이를 이해하지 못한 내 무지에 불과했다. 고양이 삶에서 자유가 가지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소중이의 주된 하루 일과는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것. 이외엔 대소변을 보거나 밥 먹는 일뿐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움직임이나 애교는 그저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의 간접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회의에 다녀온 나는 기겁했다. 복도에 면한 출입문 위 창문이 산산조각 나 있는 게 아닌가. 소중인 언제나처럼 창틀에 앉아 있었는데, 잠시 후 슬며시 내게 다가와 몸을 비볐다. 아무리 생각해도 창문이 깨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둑이 들 곳도 아니었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저 작은 창문으로 침입할 수 있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없어진 물건도 없었다. 문득 출입문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소중이가 자주 올라가던 곳이다. ‘설마 저 곳에서?’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소중이가 야옹~’하고 울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의 전후에 생긴 변화는 오로지 깨진 창문뿐이었다. 소중이 몸엔 상처 하나 없었다. 그가 범인이라면 유리 조각으로 인해 가벼운 상처라도 있을 법 한데 말이다! 그저 해프닝이라 넘기고 단념할 수밖에. 다른 사람들도 거 참 묘하네요.’하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려는 순간, 소중이가 책장 위에 올라섰다.

 

온 몸이 소름끼쳤다. 냉큼 책장 위로 올라간 그는 스멀스멀 주위를 살피더니 출입문 위 창문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책장에서 창문까지 자신이 과연 뛸 수 있을지 없을지 거리를 재는 게 아닌가. 그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마치 100m 출발을 기다리는 육상선수처럼 뒷다리를 가다듬고 있었다. 그래, 바로 녀석이 범인이었던 것이다.

 

창틀엔 유리조각이 아직 군데군데 박혀 있었기에, 그리고 실제 소중이가 그 거리를 뛸 수 있겠다는 생각에(녀석은 창문에 부딪힌 후 땅으로 떨어졌던 것. 유리 조각은 사무실 밖, 그러니까 복도 쪽에 흩어져 있었다. 안에서 밖으로 창문이 깨진 증거였다) 나는 얼른 그를 저지했다.

 

왜 그런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을까? 답은 뻔했다. 소중인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어떡하면 저 드넓은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순간, 내가 그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반려동물이 내게 지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반려, Companion이란 의미는 말 그대로 함께함을 의미했다. 우리가 자신의 편의와 기쁨을 위해서만 개나 고양이와 함께하려 한다면 그들은 반려동물이 아닌 [애완동물, Pet]과 다름없는 존재에 불과할 터였다. 생명은 결코 애완용품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반려동물과 산업동물을 명확히 구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반려동물은 흔히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을 지칭하는데, 여기엔 보통 우리와 함께 생활하기 상대적으로 용이한 작은 동물이 속한다고 나는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작을뿐더러 인간에게 친근하고 온순한동물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인간에게 친근하고 온순한동물은 소위 산업동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돼지, , 염소 모두 인간에게 친근하고 온순한동물이다. 단지 그들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를 뿐이다. 오랜 전엔 반려동물과 산업동물의 구분이 오늘날처럼 뚜렷하지 않았는데,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축산업과 사료산업을 축으로 하는)는 둘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 간극은 오늘날 굉장히 모순된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는데, 이는 너무도 비극적이라 우리는 애써 무관심으로 외면하고 있다. 바로 먹어도 되는 동물과, 먹지 말아야 할 동물이 철저히 구분지어진 현실 말이다. 이는 결국 동물 중에 반려동물은 우리가 함부로 대해선 안 되며 그들의 고통과 기쁨은 함께 나눠야한다는 해괴망측한 개념을 만들어 냈다. 동물 중 반려동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내가 책임진 동물인데 말이다.

 

다시 소중이이야기로 돌아오자. 결국 나는 녀석을 소유하고픈 욕구 때문에 그를 위한답시고 철창 안에 가둬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하는 우려는 사실 도망가면 어쩌나’, ‘다른 삶을 포기하더라도 너는 내 곁에 있어야 해하는 욕심의 변명에 불과했다. 나는 그를 놓아주기로 결심했다. 그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양보하기로 마음먹고 그 동안 굳게 닫혔던 창문과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결국 소중이 입장에선 목숨을 걸고 창문을 깨부순 끝에 고양이로서의 자유를 쟁취한 거였다.

 

바깥세상으로의 출입을 허용한 그날부터 하루하루 조바심이 났던 게 사실이다. 그가 문 밖을 나설 때면 언제나 꽁무니를 쫒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믿음을 얻었다(아니, 그가 주었다고나 할까?). 그는 아주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탐험했는데, 그 한걸음 한걸음이 어찌나 조심스럽던지 보는 내가 답답할 정도였다. 우선 2층을 둘러본 뒤 1층 계단을 정복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1층에서 건물 앞뜰까지 다시 한 달, 그 뒤 다시는 더 나아가지 않았다. 예전 야생동물의학 수업 때 사자와 호랑이를 비롯한 고양이 과 야생동물이 영역을 인지하는 과정을 배운 적이 있는데, 딱 그대로였다. 소중인 스스로 정한 보금자리에서 예전보다 활력이 넘쳤고, 몸의 맵시 또한 날로 날렵해졌다. 내가 한 일이라곤 단지 문을 열어준 것뿐이었다.

 

이후 나는 소중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했다. 실내에 속박된 고양이는 세상을 모르는 고양이일 뿐이다. 고양이로서의 본능을 마음껏 뽐낼 기회를 철저히 박탈당한 동물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를 바라보는 나 또한 그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자유가 허용된 그날부터 우리 사이엔 추억이 부쩍 많아졌다. 소중인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건물로 돌아오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새를 잡기 위해 그 높은 나무를 올랐다(인터넷 사진으로나 볼 수 있던 바로 그 모습 말이다!). 그는 외출할 때면 갖은 종류의 곤충을 입에 물고 돌아왔는데, ‘작은 설치류와 곤충이 야생에서의 주식이라는 수의학 원서 내용 그대로였다(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는 살아있는 상태의 먹이는 절대 먹지 않았다. 완전히 죽은 후에야 만찬을 시작했는데,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거나, 발로 툭툭 치며 가지고 놀곤 했다. 내겐 이럴 때 녀석이 가장 섹시해 보인다). 물론 이러한 모습들은 집에서 보이는 행동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분명히 확신하건데 자유를 누리는 고양이는 길고양이에게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고양이를 실내에만 두고 함께한 사람이 쉽사리 느낄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를 터.

 

고백하자면, 나는 그 동안 길고양이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무심한 수의학도였다. 수의대의 임상수업은 보통 개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해부에서부터 내과, 외과를 비롯한 임상실습, 대학병원 로테이션까지 온통 개 위주의 학습이 이뤄진다) 개인이 스스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저 책으로만 고양이를 아는 수의사가 될 수밖에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머리로만 고양이를 알지 실제론 고양이와 먼 수의사가 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나 또한 스스로를 Dog Person(서양에선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우스갯소리로 Dog Person, Cat Person이라 지칭하기도 한다)으로만 여겨왔다. 누군가 내게 고양이 좋아하세요?’하고 물을 때면, 실제론 관심조차 없었음에도 수의사라면 모든 동물을 사랑하지 않겠어? 고양이도 물론 마찬가지지라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하곤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소중일 덥석 구입한 거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길고양이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어떤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소중이가 계기였다고나 할까. 길을 나설 때면 문득 길고양이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특히 내가 지난 2년간 생활했던 진해 군부대 주변엔 길고양이가 꽤나 많았는데(내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주변엔 길고양이가 없었다. 그들은 주로 식당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새로 등장한 검은 새끼고양이들, 피부병을 앓고 있던 노란 고양이(근무지의 터줏대감으로 짬 타이거라 불렸는데, 항상 입원병동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예전에 블로그에 녀석 피부병에 관한 글을 올린 적 있다), 이 짬 타이거를 보좌하던 회색, 얼룩무늬 고양이. 항해를 시작하기 전, 일 년 만에 다시 방문한 그곳은 모두가 그때 그대로였다(새로운 얼굴도 보였는데, 예전 새끼고양이가 커서 못 알아본 거일수도).

 

관심이 간 건 군부대 길고양이뿐이 아니었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 또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볼 때마다 든 생각은 과연 저들은 행복할까?’였다. 분명 군부대 길고양이는 척박한 도심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보다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요즘 나는 군부대 길고양이가 실내에 속박된 채 살아가는 고양이보다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심의 길고양이와 가정의 고양이는? 솔직히 나는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쉽게,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다.

 

 

 

 

길고양이는 말 그대로 고통 받고 있다. 신선한 물과 음식, 따뜻한 보금자리 없이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인간성은 이미 극에 달했는데, 이는 종종 길고양이를 희생양으로 내몰고 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주기적으로 길고양이 학대사건이 메인뉴스를 장식하고 있으며, 때로는 도리어 언론이 길고양이를 유산과 자살의 주범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사람들은 도심의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현대화의 산물이 내뿜는 소음엔 무감각하면서도 유독 고양이 울음소리엔 날카롭게 반응한다. 인간 이외의 존재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공존의 미덕은 잊어버린 지 오래인 이 사회에서 고양이는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나는 이 모든 걸 부정하지 않는다. 고양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간은 비록 짧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만 종합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길고양이를 위해 몸소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는 그렇게 많은 분이 계신지도 그 동안 전혀 몰랐다. Cat Mom이라는 단어는 어떤 관념으로만 알고 있었지, 그들을 접하고 나 또한 Cat Father가 되어 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고양이 전문가다. 길고양이의 습성과 행동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이다. 그들 앞에서 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데, 고작 내가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의학적 지식뿐이기 때문이다(수의사는 물론 의학적 지식에 충실해야 하지만, 동물의 습성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도심의 길고양이가 가정의 고양이보다 불행한지 여전히 확언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물이 바로 고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에 분개할 사람이 많을 줄로 안다. ‘길고양이가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망언을 하다니! 우리는 길거리에서 고통 받는 길고양이를 하루에도 수도 없이 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구조해 가정에서 따뜻하게 보호해 주지는 못할망정, 이 모든 것을 때려치우란 말인가?’하고 말이다. 하지만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나는 고양이라는 동물의 특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그들이 처한 상황을 다시 재조명해 보려는 것뿐이다. 고양이를 이야기할 때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 속담이 자꾸 떠오른다. 내 생각이 왜곡돼 전달되지 않도록 다시금 주의를 기울이며, 스트레스가 고양이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내 출발점을 명확히 하려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당신도 이미 눈치 챘을 터.

 

 

 

 

 

다들 아시다시피, 혹은 아시는 것 이상으로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굉장히 민감한 동물이다. 수의학 서적을 펼쳐 고양이 질환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환을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물론 모든 질환이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 하지만 스트레스가 고양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왜 사자는 충치 하나로 인한 스트레스로 목숨을 잃는다고도 하지 않은가). 이중엔 간지질증Feline Hepatic Lipidosis이나, 하부요로기계질환Feline Lower Urinary Tract Disease와 같이 생명을 위협할 만한 질환도 다수 있다.

 

20124, 나는 영국에서 열린 한 수의사학회에서 전율을 느꼈다. 학회 셋째 날은 몹시 기대되는 날이었다. 바로 저명한 고양이 비뇨기계 질환 전문의인 Denis Chew교수의 수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D. Chew교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출국 두 달 전에 그의 저서를 구입했는데, 책이 닳도록 읽을 수밖에 없었다. 공부한 흔적 없는 책을 내밀 순 없지 않은가. 결국 나는 그의 사인을 받는데 성공했는데, 한국에서 왔다니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 꼭 방문하고 싶어요. 당신이 그때 안내해 주면 되겠네요?’ 물론 의례상 한 말이겠지만 나같이 풋내기 수의사에겐 잊히지 않는 말이다). 그날의 수업주제는 고양이특발성방광염Feline Idiopathic Cystitis. 특발성이란 단어는 흔히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의학용어인데, D. Chew교수는 이 질환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이특발성방광염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스트레스에 있으며, 이 스트레스는 단순히 방광뿐만 아니라 뇌에서부터 심장, , 신장 등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다고 역설했다. 결국 고양이특발성방광염은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 총체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선 고양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우리가 고양이가 어떤 동물인지 이해해야 가능하다. D. Chew교수는 고양이특발성방광염의 다른 말인 FUS(Feline Urinary Syndrome)보다는 FUS(Feline Under Stress), 혹은 Pandora Syndrome이 적절할 거라 덧붙였다. 스트레스가 미치는 총체적 현상을 빗댄 말이었다.

 

D. Chew교수는 스트레스가 고양이 건강에 미치는 병태생리학적 영향에 이어, 이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말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갑자기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물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큰 한숨을 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은연중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말이었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사실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한다는 그 자체가 가장 큰 문제지요.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고양이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양이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려 애쓰고 있지만, 그 모든 건 사실 그들을 자유롭게 하면 단 한 번에 해결될 거였다. 고가의, 다량의 타워나 스크래치는 결코 자연을 대신할 수 없다. 집안의 고양이 수보다 +1~2개의 화장실을 둬야 한다고? 우리 인간과 실내에서 살아야만 하는 인위적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다. 결국 수의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조언은 밖을 허용해라일지도 모른다. 꼭 화장실 밖에, 혹은 혈뇨를 볼 때와 같이 표면상에 문제가 보일 때만 어떤 질환 상태를 의미하진 않는다. 실내에 꼭꼭 갇혀 생활하는 순간순간 고양이는 스트레스라는 정신장애상태에 빠져 있으며, 이는 신체 곳곳에 암암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D. Chew교수는 이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다(그 또한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하고 있는데, 모두 자유롭게 마당을 넘나드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런 문제인식 없이 동물의 행동을 그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여기서 동물의 행동은 비단 고양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예로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보이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우리는 정상으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17세기 철학가 데카르트는 동물을 아무런 의식 없는 기계와 같은 존재라 여겼다. 그는 흥미롭게도(혹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생각을 고양이를 예로 주장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고양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실제 그들의 움직임은 생리작용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식이었다. 당신은 어떤 무미건조한 일을 반복할 때 무의식 상태에 빠져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바로 그 상태가 동물 의식의 총체라는 거다. 무모한 절대성과 확실성에 근거한 그의 철학은 오랜 세월 시대를 지배해 왔는데, 분명 오늘날 우리 세대의 사고에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고양이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D. Chew교수의 말은 혹시 데카르트를 겨냥했던 건 아닐까?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눈치 챈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내에 감금된 채 살아가는 고양이에겐 자유가 없다. 개에 비해 야생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양이에게 이와 같은 삶은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그들은 하루 대부분을 스트레스 속에 살아간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실내에서 생활하는 고양이에겐 다른 측면의 안전함이 제공된다. 예방접종이나 건강검진을 통해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으로부터 보호받고, 또 치료받을 수 있다. 사람과 차량, 추위와 더위를 피할 필요도 없으며 다른 고양이와 다툴 일도 없다. 또한 신선한 물과 양질의 음식도 얼마든지 제공된다.

 

 

 

 

반면 도심의 길고양이에겐 자유가 있다. 그들은 가고 싶은 곳을 자신만의 영역을 기점으로 마음껏 활보할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 교배하고 출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비록 난산으로 인해 태아와 산모 모두의 생명이 위협받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하지만 도심의 길고양이는 언제나 가파른 낭떠러지를 뒤로 한 채 살아간다. 배고픔, 추위와 더위, 각종 질환에 시도 때도 없이 생명을 위협받으며 살아간다. 그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다. 어떤 인간을 이웃으로 만나냐에 따라 존속이 결정된다.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고양이와 반려함은 단지 그들에게 제공하는 음식과 보금자리, 의학적 지원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을 실내에 속박한 채 함께함을 표현하기에 반려라는 단어는 분명 적당치 않다. 그렇다면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결국 모든 실내의 고양이에게 외출을 허락하자는 것일까? 내 답변은 그래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이다. 오늘날 도심에서 실내의 고양이에게 자유를 허락함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수많은 인파와 차량, 길고양이(길고양이의 영향은 물론 인파와 차량에 비하며 매우 미미하다)로 뒤덮인 도심에서 당신 고양이는 스스로의 영역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도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내 차갑고 혼란스런 도심으로부터 더 큰 스트레스와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될 터. 이를 지켜보는 사람 또한 면도날 위에 서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자유롭게 생활하는 소중일 흡족하게 바라보면 살던 2012년 겨울,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오전이었다. 사무실에 사복을 입은 누군가가 찾아왔는데, 그는 과거 이곳에서 근무했던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허탕을 친 그가 떠난 지 두어 시간 지났을까, 행정부에서 연락이 왔다. 당장 부장실로 오라는 거였다. 부장님은 소중일 서울로 보내던지,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사무실에서 없애라고 말씀하셨다. 오전에 찾아왔던 그 사람은 알고 보니 감찰 쪽 사람이었던 것이다. 규율에 의하면 개인 소유의 동물을 근무지에서 키울 수 없다고 한다. 수의사는 예외로 봐줄 수 있지 않느냐며 항변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따지고 들어가면 할 말이 없었기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 않나.

 

그렇게 소중인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예전의 나처럼 고양이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셨고, 더욱이 그 세대 분들이 으레 그렇듯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소중에게 빠져드셨다. 내가 그러했듯이. 다행스럽고 기뻤다. 우리 형제는 당시 모두 군복무를 하고 있어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었는데, 홀로 남겨진 그들에게 소중인 어떤 활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에게서 자유를 앗아갔기 때문에.

 

처음 나와 함께했을 때처럼 소중인 다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현관문 앞에 턱하니 버티고 앉아 야옹~, 야옹~’하며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스트레스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건강 또한 예전보다 나빠졌을 터. 어쩌면 계속해서 안 좋아질 수도. 한 번은 그에게 밖을 허용해 보기도 했다. 우리 집은 4층 상가건물의 맨 위 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는 우선 옥상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야금야금 점점 활동범위를 넓히더니 어느새 옥상을 장악했다. 그러나 옥상은 또 하나의 실내에 불과했다. 그는 딱 예전처럼, 진해에서와 같은 삶을 원하고 있었다. 그 다음 주에는 옥상은 거들떠도 안 보고 아래층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3, 2, 1. 더 이상은 도저히 허락할 수 없었다. 상가건물인지라 2층과 1층엔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건물 바깥세상은 더욱이 적합하지 않다. 차와 사람이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길고양이 또한 엄청나게 많다. 혹여나 건물 문이 닫히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이 여닫이문은 예전에 한 고양이 가족의 생이별을 초래한 적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인간의 '선의'가 때론 '악의'일 수도글에 담겨있다. 또한 어릴 적 나는 교통사고로 개를 잃은 경험이 있다).

 

결국 자유를 보장해 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고양이와 함께하고 싶어, 나는 수의사니까 당연히 동물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 물론 행복하게 해줘야지와 같은 짧고도 안일한 생각에 덥석 한 생명을 구입했던 것이다. 이는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결코 입양이 아니었다. 이렇게 실내에서만 소중일 둬야하는 현실이 가지는 의미를 내가 그 전에 알았더라면 과연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나는 결코 그에게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군복무 중이었으며 전역 후엔 도심에서의 삶을 계획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진해에서 그에게 바깥세상을 보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깨진 창문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우연찮은 기회에 이를 통해 고양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뿐이지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길고양이는 분명 도심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기고문 인간의 '선의'가 때론 '악의'일 수도에서 길고양이에게 도심은 또 하나의 야생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가끔 이 야생은 지옥에 가깝게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실내에서의 삶도 고양이에겐 가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차단은 결코 유토피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인간과 함께한 역사는 개의 그것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혹자는 숫자를 들이대며 고양이 또한 개와 그 역사를 함께한다며 이를 부정하려 할 테지만(실제로 고대 이집트와 같은 유적에서 고양이의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아직 지니고 있는 야생성은 우리가 그들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결코 혼자 사는 여성이 키우기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 당신이 하루를 직장, 학교, 유흥가에서 보내고 있을 때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시간을 보내는 동물이 아니다. 홀로 남겨진 그 시간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든 신체 기간 하나하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고양이에게 특히 유별난 그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늪에 빠져 있을 것이다. ‘늪에 빠져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음에 주목하라. 기다린다는 표현은 개에겐 적합한 말일 수 있다. 고양이에게 우리와 함께함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돌아와도 어느 순간 고양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 숨 쉬고 있을 테니까. 그들은 바로 그런 존재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 이 사람, 도대체 뭐 하는 수의사인가. 그럼 고양이와 함께하지 말라는 건가? 우리 모두는 고양이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건가? 왜 이리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이야? 현실성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상주의자구만.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한다면서 도심에서는 안 된다고, 길고양이에겐 자유가 있다면서 그들 또한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니, 고양이는 그럼 어디에서 살라고! 무엇보다 당신도 당신 고양이를 결국 실내에 가둬두고 있잖아!’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하지만 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닌 아무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주제를 공론화하는 자야 말로 현실주의자일 터. , 그럼 내 이야길 끝까지 들어보길 바란다.

 

최근 들어 급증한 도심 길고양이의 중심엔 바로 가정으로부터 유기된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의 야생본능과 유연한 신체, 그리고 독특한 발정주기는 그들로 하여금 이 척박한 도심에서도 살아남게 했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유기되는 고양이에 있는데, 이는 우리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함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감을 요구하는지 절실히 깨닫지 못한 채 오늘날 수많은 동물이 '구입'되고 있다. 우리가 소, 돼지와 같은 산업동물을 한낱 상품, 소모재로 인식하듯(이 또한 큰 문제인데, 거대 축산업의 문제에 관해선 본 글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반려동물 또한 지폐 몇 장으로 내 소유로 삼을 수 있는 어떤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암담한 현실을 타파할 방법은 없을까? 영국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다음은 잉글랜드 호수지방에서 만난 남자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그와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가 저 멀리 보였다. 막차를 놓치면 두 시간가량 어둠 속을 홀로 걸어가야 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어 버스에 올라탔는데,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전에 버스기사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내 뒤를 가리켰는데, 한 남자가 그의 개와 함께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버스를 타기 전에 개의 목줄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를 알지 못한 채 그만 새치기를 하고 만 거였다. 민망함에 몸을 감출 줄 몰랐다. 나는 그 남자와 버스기사에 미안함을 표현했는데, 진심이 전해졌는지 그들의 당황했던 표정은 이내 웃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남자 옆에 자리를 잡았다. 개는 그 앞에 얌전히 앉아있었는데, 이름은 렉시였다. 그에 따르면 렉시는 RSPCA라는 영국의 동물보호단체에서 입양한 아이라 한다. 그곳으로부터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위해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먼저 그가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여가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하나하나 확인한다고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그와 함께할 아이가 결정되는데(그가 아이를 정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바로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보호소에 얼마 동안 주기적으로 방문해 입양을 위한 자신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새 삶을 시작할 준비시간을 준다(우리나라에서 동물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준다는 말을 했다간 미친놈 소리를 듣기 십상이지만 이곳에서는 이러한 대화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함께하길 원하는 이들에겐 가장 첫 번째로 유기동물 입양이 권장된다고 한다. 영국인이겐 버려진 동물을 입양해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 줌이 반려동물과 함께함에 있어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는 반면, 상품화된 동물을 돈을 주고 사는 행위는 그리 떳떳한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무르익은 것이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사람 고아원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바로 그에 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과 함께하는 삶이 개와 고양이에겐 우리가 생각하듯 그리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우리 사회엔 책임 있는 보호자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책임이 반려동물을 행복하게 하는 절대요소가 아니란 점이다. 책임으로 무장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자유란 분명 한계가 있다. 특히 고양이에게는 더욱.

 

이렇듯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가득해도 모자랄 판에, 무책임한 보호자를 양산하는 암초가 있다. 바로 아무런 기준 없이 반려동물 개체 수를 끊임없이 증가시키는 행위. 이는 준비되지 못한 사람에게 반려동물을 손쉽게 구입할 기회를 제공할 뿐이며(반려동물이 상품으로 전락한 오늘, 개체 수 증가는 곧 반려동물 판매행위를 말한다), 결국 유기동물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싶을 때 모두가 가장 먼저 유기동물을 떠올린다면? 분명 상황은 바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유기동물은 크게 줄 것이다. 또한 유기동물이 그들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따스한 손길을 줄 수 있는 보호자를 엄격한 기준에 의해 가려낸다면(나는 분명 탈락할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을 최대한 피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 보호자는 반려동물과 함께함에 있어 항상 나름의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결국 모든 반려동물이 해가 갈수록 줄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동물만이 지금보다 훨씬 적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유기되는 고양이 없이 길고양이 수는 그들 나름의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 유지될 것이다(길고양이 수를 조절하기 위한 인간의 개입은 분명 최소화되어야 한다). 실내의 고양이 또한 크게 줄 것인데, 그들의 삶은 한껏 자유에 심취해 있을 터. 아주 간단한 생각 아닌가. 책임 있는 보호자에게만 반려동물을! 가장 먼저 유기동물을! 안 될게 무엇이 있는가?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을 뺏어간다며 비난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무책임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꼴일 테니까. 더 이상 입양할 유기동물이 없으면 어찌 하냐고? 그런 상황이 제발 왔으면 좋겠다. 입양할 수 있는 유기동물의 수가 줄어들수록 반려동물과 함께하는데 더 높은 자격이 요구될 테니.

 

이 모든 걸 실현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반려동물 판매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동물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의식이 어느덧 성숙해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유기동물을 가장 먼저 찾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날이 언제 올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반려동물 판매행위자체가 동물을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반려동물 판매행위가 금지될 때, 유기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엔 큰 개선이 있을 터. 단지 시간에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사고가 행동을 이끌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로운 행동이 올바른 사고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 우리는 어느덧 고개를 돌려 거대 축산업의 횡포에 짓밟히고 있는 가축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 판매행위가 금지되고 유기동물의 입양의 엄격한 기준이 바로 설 때, 더 이상 반려동물은 돈을 주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마음속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을 때, 동물복지를 위한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은 너무도 손쉽게 이뤄질 것이다. 오늘날 동물기본권을 위한 입법이 항상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바로 인식의 차이에 있다. 동물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당신은 무엇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반려동물 판매행위의 금지라 본다.

 

한편으론 이러한 계획은 한 가지 맹점을 안고 있는데 바로 돈 없고, 시간에 쫒기는 사람은 대상에서 철저히 소외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유기동물을 입양할 수 있는 자격조건이 엄격해 질수록 자연스레 보호자 될 사람의 생활여건을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반려동물에겐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자금,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마당을 소유한 보호자가 아무런 여력이 없는 보호자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이 부분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묘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는 오히려 너무 이상적인 접근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함은 사람 아이를 입양함에 준해야 함엔 당신도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함께함에 많은 돈과 시간이 듬을 인정하지 못할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반려동물 유기에서 금전적인 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한없이 따뜻한 감성과 동시에, 차가운 이성을 마음에 지녀야 한다(강조하건대,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더욱). 반려동물도 우리 인간과 똑같은 생명인 만큼 보통 십 년이 넘는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덴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이 든다. 사람들은 물론 반려동물을 구입하기에 앞서 이를 고려하기는 한다. 다만 초기 예방접종 비용과 한 달에 사료 값이 얼마나 드는지 계산하는데 급급할 뿐. 반려동물도 아플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여기엔 큰 비용이 따름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생명을 생명으로 바라보지 못해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다.

 

혹자는 돈과 시간이 책임감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반문할 테다. 나 또한 위 두 문단을 써가며 얼마나 내 자신이 차갑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여전히 명료하다. 반려동물은 소유를 선택할 수 있는, 보장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자녀를 가질 때, 혹은 입양을 할 때처럼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함을 진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기엔 자연히 돈과 시간이 결부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절대성은 곧 우리의 책임감에 의해 상대성을 띄게 된다.

 

결국 어떤 궁극적인 가치가 있을 때만 반려동물은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나는 진해에서의 소중일 바라보며 이를 발견했지만, 서울에서의 그를 보고 있자면 괴로운 마음뿐이다. 그를 통해 나와 우리 가족은 즐거움을 얻지만 이는 결코 순수하지 못한 무엇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반려동물과 함께함에 있어 더욱 엄격한 규율이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성숙치 못한 우리의 의식은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을 때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차가운 바람에 의해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제나 소중일 걱정하고 위하고 평생을 함께할 거라며 애써 자위할 순 있어도, 처음 어떤 도구로서 그를 [구입]했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이처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고 확신한다. 그나마 가장 가까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생명인 반려동물까지 완전히 소모재로 인식되는 그날, 혹은 오늘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쉬운 일은 결코 없다. 인생에 희로애락이 가득한 것처럼 반려동물과 우리 관계 또한 마찬가지일 듯하다. 이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지닌 가장 큰 고민을 나누며 글을 마치려 한다. 바로 반달이이야기다. 반달인 두 달도 채 못 넘긴 나이에 버려진 아이였다. 나는 포항에서의 군 생활을 시작하는 첫날 녀석을 발견했는데, 아직도 그때가 선하다. 작은 골판지 박스에 홀로 떨고 있던, 오밤중에 사온 편의점 전복죽을 헐레벌떡 몽땅 먹어치운 반달이, 이를 흡족히 바라보던 나. 내게 반달인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약 4개월 후, 변화가 생겼다. 소중이 때와 비슷한 이유로 서울로 보내야만 했던 것.

 

혼란스러웠다. 나는 분명 좋은 보호자였다. 단지 버려졌던 녀석을 거둔 하나만으로 생색내는 게 아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줬다. 반달인 드넓은 풀밭에서 마음껏 뛰놀았고, 땅굴을 파기도 했다. 그는 그가 생활했던 공간의 특수성 덕분에 목줄에 매인 삶을 살 필요도 없었다. 더욱이 그에겐 의무라는 소중한 친구도 있었다. 완전한 자유를 얻은 두 마리 개가 뽐내는 본능을 나는 여실히 목격했다. 언젠가 그 삶에 변화가 불가피함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삶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출항하기 얼마 전, 반달일 데리고 서울에 갔다. 문제는 예상보다 컸다. 처음엔 솔직히 소중이 걱정만 했었다. 개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자란 소중이가 과연 반달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안 그래도 예전의 자유를 잃고 살아가는 녀석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리란 건 눈에 보듯 선했다. 그런데 문제는 반달이도 마찬가지였던 것. 고양이라는 동물은 그가 그동안 겪었던 사람과 개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둘은 집 안에서 마주칠 때마다 날을 세웠다. 폭풍전야라고나 해야 할까. 그 긴장감이 어찌나 팽팽했던지 어머니는 심지어 진담 반 농담 반 이렇게 말씀하셨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나겠어.’ 나 또한 이 상황이 너무 괴로워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격리시키기 일쑤였다.

이대로 모든 짐을 부모님, 소중, 반달에게 떠안기고 떠날 순 없었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내가 모두 초래한 일 아닌가. 하지만 출항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일주일.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이러한 고민을 한 지인에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선뜻 내가 데리고 있을게요. 안 그래도 우리 아이 친구 만들어 주고 싶어서 누구 없나 생각하고 있었는데!’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내게 구세주와 같았다. 더욱이 내가 믿고 반달일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반달인 다행히 그곳에 적응해 너무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진 아직도 3개월이 남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화해? 소개? 적응? 무슨 단어를 써야할지조차 모르겠다. 둘 사이의 긴장감이 전혀 나아질 기미 없이 출항 전과 같이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만약 그런 최악의 사태가 실제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결국 내가 풀어야한다. 여기까지가 현재상황이다.

 

이처럼 나는 나와 함께하고 있는 반려동물에 있어 무책임한 반려자다. 누군가는 그 정도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위로할 지도,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 수의사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냐며 나를 더욱 구석으로 몰아갈 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나는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소중과 반달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만약 반달일 처음 만난 그날 유기동물보호센터에 보냈다면?’하는 생각이 들 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로부터 선택되지 못할 땐 오히려 그를 안락사 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더욱이 반달인 똥개에 부정교합에 배꼽탈장까지 가진 녀석. 세상 기준에 의하면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제 글을 마치려 한다. 소중과 반달에 관해 내가 간직한 굵직한 이야기를 거의 다 했다. 최대한 나의 시선을 솔직하게 담으려 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어느덧 나를 향한 어떤 관념을 지니게 되었을 터. 만약 당신이 나를 동물을 사랑하지만 인간과 함께하는 오늘의 삶엔 때로는 회의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면 내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동물은 우리와 분명 다른 존재다. 반려동물 또한 이를 피해갈 수 없다. 개나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한 삶은 길다고 이야기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도심에서 함께한 역사는 결코 길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함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한 책임감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그저 기다리기만 해선 결코 이룰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반려동물 판매행위]를 금지해야만 하며, 모두가 유기동물을 반려동물과 함께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한다. 유기동물을 대하는 사회적 제도는 어떤 골칫거리를 제거함이 아닌 바로 오늘날 철저히 유린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임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시작했던 게 항해 11일째였는데, 오늘이 벌써 14일째. 너무도 보고 싶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동생, 부모님, 그리고 소중이, 반달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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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의사 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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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명씨 2013.01.15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모든 사육의 종식. 그게 제가 꿈꾸는 것입니다. 아직 좀 더 혼란스러우셔야 할 듯하지만 ^^; 분명히 목적과 수단의 명확한 구분에까지 도착하셨군요.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제 고양이에게 외출의 자유를 허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벼려져 길바닥에서 쫓겨다니던 시절이 이녀석에게 악몽으로 남았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같은 생각의 길에 서있는 분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주절거렸습니다.

    • 수의사 연중 2013.01.16 0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사육의 종식이라. 동물권 이야기를 할 때면 육식을 하는 사람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제 스스로의 가치관도 점차 바뀌어져 가겠지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2. 단일 2013.01.16 0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봣어~ 철학이 있는 수의사연중~!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평소 생각지못했던 부분들인데 이제 고양이들을 다시 보게 될듯. 오늘 진해 군부대 안에서 차를 피해서 도로를 건너는 고양일 봤는데 군부대 안에선 차들도 천천히 다니니깐 군부대고양이들이 다른 길고양이보다는 훨씬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오. ^^

    • 수의사 연중 2013.01.16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단일이형 안녕하세요^^ 저도 형께서 페북에 링크한 동영상 너무 잘 보았어요. 주위에도 권하구! 그 짬 타이거는 잘 있나 모르겠네요. 군부대는 일정 구역마다 식당도 있고, 아무래도 뭔가 외부에 비해 느릿느릿하게 살아가는 곳이라 고양이들도 조금은 여유있게 지내는 듯해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sooavirus 2013.01.16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밖을 보는 고양이...자유...
    길고양이라는 꼬리표..
    단지 집보다는 바깥 풍경에 마음이 끌려 호기심에 창문을 보고... 무언가에 집중하다 창문을 깬 것뿐 일 수도 있는데 인간의 감정을 너무 이입하는게 아닐까요..
    길고양이의 비참한 삶을 들여다 본다면 바깥생활을 자유로 단정짓는 것은 인간의 미화라는 생각이 드실거에요 여긴...길고양이들이 뛰어놀수 있는 야생이 아니라 쥐약을 놓고 길고양이를 차로 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도심이라는 공간이니깐요
    저희 아이들도 길고양이였지만 지금 집에서 유유자적 하며 평온하게 살고 있어요 그들 역시 창문을 보고 울기도 하지만...전 그걸 나가고 싶은 욕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빌미로 길고양이를 더 쉽게 유기 하기도 하고요... 원래의 터전으로 돌려보내준다는 것으로 죄책감도 덜고요...
    집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는 잠깐이에요 그들은 곧 적응하고 집이라는 공간을 자기 영역으로 인식하니깐요.. 그때는 되려 밖에 데리고 나간다거나 이사를 가서 공간이 바뀐다거나 하면 스트레스를 받죠.. ㅎㅎ

    • 수의사 연중 2013.01.16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 수도 있겠죠. 제가 글의 표현이 감정이입의 결과일수도. 하지만 자연상태의 고양이 삶이 실내는 절대 아님은 분명합니다. 고양이란 존재가 반려동물로 인류에게 인식된 시간은 개에 비해 길지 않고 그 때문에 동물 본연의 모습이 바뀌기 이전에 빨리 실내생활을 시작한 이면이 없지 않다고 봐요. 또한 수의학적으로도 실내생활을 통한 반려묘의 스트레스 관련 질환은 이미 자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생활환경의 변화, 다른 반려동물 등 큰 이벤트가 있을 때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건 말씀하신대로 분명하지요. 저도 실내에서 생활하는 소중이를 볼 땐 녀석이 세상 모르게 편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하지만 예전에 한적한 도심에서 뛰놀던, 그리고 의학적 견해(이 표현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해요)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녀석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을거란 생각도 해 봅니다. 이렇게 실내생활을 반대하지만 저도 글에서 보시다시피 서울 생활에선 님처럼 녀석을 실내에서 지내게 합니다. 얼마 전엔 집을 나가 6일 만에 찾기도 했는데, 삭막한 도심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아찔할 뿐입니다.
      도시에서 고양이를 풀어 놓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저는 고양이 본연의 모습을 알고 정말 우리가 녀석들을 위한 장소와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선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자세,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써 본 겁니다.

      하긴, 어찌 정확히 녀석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실내에서 실외에서 생활하는 모습 모두 우리 인간의 잣대로 판단한 것일테니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수의사 연중 2013.01.16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을 읽다보시면 도심에서의 길고양이 삶을 미화시켜 놓지 않았음을 아실 수 있어요. 눈이 없는 길고양이, 차를 피해가는 고양이 두 마리, 피부병을 앓고 있는 길고양이 사진과 그 내용을 보시면 도심에서의 삶은 치명적이라 생각한다는 걸 아실 겁니다.
      저는 고양이 본연의 삶을 옛날 한적한 시골 환경에서 살아가던 제 반려묘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 한 겁니다. 고양이란 존재 그 자체에 과연 무엇이 맞는지 우리가 좀 더 고민한다면 우리 곁의 그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

    • 윤수아 2013.01.16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지송해요 앞에 읽다가 댓글 달고 뒤에 읽었어요 ^^

  4. 유기동물책임입양해요 2013.01.16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올리시길 학수고대하며 거의 매일 기웃거렸는데,연중 님은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또한 깊이 공감되는 글로 인해,생각이란 걸 하게 되네요.동물판매가 금지되고,유기동물이 1순위로 입양되는 그 날이 반드시 왔으면 합니다

  5. 2013.01.16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무명씨 2 2013.01.17 0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어떤 유명인이 고양이 유기사건과 얽힌 적이 있는데요. 유기란 단어도 반려 성립되어야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어찌보면.. 그 분이 말하길 자유를 찾아 갔다. 했었는데 길고양이의 삶이 실내 고양이의 삶보다 불행하다 단정지을 수 없다면, 더 행복할 수도 있다면.. 고양이 유기의 무책임함은 그 고양이를 불행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길고양이 증가라는 현상에 기여한 것, 그것을 가르키는 것일까요? 그 때 사람들이 힐난했던 이유는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을 불행으로 연결시켰기 때문이거든요. 이것이 전제가 되었기에 죄책감이 없는 그 분의 대답이 뻔뻔하다 느꼈던 것이고 후폭풍이 거셌거든요. 틈 새로 나간 그간의 고양이들은 돌아오지 않았고요. 되돌아오지 않은 건 그 고양이들이 선택한 것일까요? 그 분은 유기의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방사.. 정도 된다고 생각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이되요.

  7. 2013.01.27 2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2013.01.28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타키맘 2013.02.19 0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해보질 못했네요
    스트레스라니.. 난 정말 우리 고양이를 존중하고 있었는지,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짚어보게 됩니다.

    항해 중 이란 말씀이 재미있게 느껴지네요
    어렸을 때 굉장히 좋아한 책 중에 하나가 돌리틀 선생님 항해기 인데,
    연중쌤 항해기도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 수의사 연중 2013.02.19 1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항해기는 지금 월간 페이퍼에 3개월 간 연재되고 있어요. 5월쯤 되면 그 동안 써 온 글도 블로그에 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좋은 글 좋은 마음으로 찾아뵐께요. 감사합니다 ^^

 

 

 

  일본인 신문기자 후쿠오카 켄세이의 숨겨진 풍경을 읽었습니다. 숨겨진 풍경이라. 제목만 언뜻 보면 사람들에게 미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서적 같지만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풍경은 달갑지 않은 죽음의 현장을 말합니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죽음이 바로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신념 아래 죽음을 가까이서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며이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다고 역설하지요.

 

  여기서 수많은 죽음은 비단 사람의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총 3부에 걸쳐 우리 주변에 교묘히 숨겨진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바로 내몰린 개고양이의 죽음, 우리가 먹는 가축의 죽음, 유서를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죽음을 말이지요. 이 중 앞의 2부를 잠시 살펴볼게요.

 

  이 책은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그 동안 이뤄지지 못했던 신선한 시선을 취합니다. 주로 동물 입장에서만 이들의 죽음을 다루는 여느 서적과 달리 작가는 길거리로 내몰린 반려동물을 안락사 시키는, 고기를 만들기 위해 가축을 도살하는, 즉 죽음을 행하는 주체자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사실 처음엔 굉장히 섬뜩했습니다. 신문기자가 이렇게까지 통찰력을 지닐 수 있을까. 워낙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장소일 뿐더러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든 주제임에도 현장을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동물구조센터나 도축장에서 일하는 수의사를 많이 보아온 저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작가가 죽음을 외면하는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왜곡된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정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우리는 기일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반려동물을 안락사하냐고 무작정 비난하거나, 도축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느덧 죽음에 익숙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결정지어 버립니다하지만 아마도 이러한 비난을 하는 우리의 태반은 실제로 동물구조센터나 도축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는 죽음을 직면할 용기가 전혀 없으면서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암암리에 비난하거나 천대합니다. 진짜 비난하고 천대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초래한 제도에 있는데 말이지요.

 

  사실 후쿠오카 켄세이가 죽음을 바라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