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신문기자 후쿠오카 켄세이의 숨겨진 풍경을 읽었습니다. 숨겨진 풍경이라. 제목만 언뜻 보면 사람들에게 미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서적 같지만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풍경은 달갑지 않은 죽음의 현장을 말합니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죽음이 바로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신념 아래 죽음을 가까이서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며이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다고 역설하지요.

 

  여기서 수많은 죽음은 비단 사람의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총 3부에 걸쳐 우리 주변에 교묘히 숨겨진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바로 내몰린 개고양이의 죽음, 우리가 먹는 가축의 죽음, 유서를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죽음을 말이지요. 이 중 앞의 2부를 잠시 살펴볼게요.

 

  이 책은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그 동안 이뤄지지 못했던 신선한 시선을 취합니다. 주로 동물 입장에서만 이들의 죽음을 다루는 여느 서적과 달리 작가는 길거리로 내몰린 반려동물을 안락사 시키는, 고기를 만들기 위해 가축을 도살하는, 즉 죽음을 행하는 주체자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사실 처음엔 굉장히 섬뜩했습니다. 신문기자가 이렇게까지 통찰력을 지닐 수 있을까. 워낙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장소일 뿐더러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든 주제임에도 현장을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동물구조센터나 도축장에서 일하는 수의사를 많이 보아온 저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작가가 죽음을 외면하는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왜곡된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정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우리는 기일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반려동물을 안락사하냐고 무작정 비난하거나, 도축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느덧 죽음에 익숙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결정지어 버립니다하지만 아마도 이러한 비난을 하는 우리의 태반은 실제로 동물구조센터나 도축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는 죽음을 직면할 용기가 전혀 없으면서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암암리에 비난하거나 천대합니다. 진짜 비난하고 천대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초래한 제도에 있는데 말이지요.

 

  사실 후쿠오카 켄세이가 죽음을 바라보는 통찰은 저와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합니다. 죽음을 직면함으로써 생명을 알 수 있다는 기조는 뒤로 갈수록 설득력을 잃습니다. 특히 이 책은 마지막에 부록으로 2002년에 일본수의공중위생학회에서 작가가 발표한 내용을 실었는데 저로 하여금 결국 비판적 시선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만들었죠. 발표 내용은 왜 이 책이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이 있으므로 우리의 생명은 빛이 난다라는 부제를 선택했는지 알게 해줍니다.

 

  작가는 동물의 목숨을 거두는 일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말합니다. 길거리로 내몰린 개고양이를 처분(이 책은 반려동물을 안락사하는 일을 처분이라 표현합니다.)함으로써 안전하고 쾌적해진 환경 덕분에 사람과 다른 반려동물이 살아갈 수 있으며, 가축을 도살해 고기를 생산해 냄으로써 인간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죽음은 숨겨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며 무의미한 살육과 학대와는 전혀 다르다고 마무리 짓습니다.

 

  그래요. 이들의 죽음은 절대 숨겨져선 안 됩니다. 그리고 본질상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작가는 스스로 우려하는 것처럼 오늘날 이들 동물의 죽음이 숨겨지고 은폐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죽음의 대부분이 무의미한 살육과 학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임을 놓치고 있는 듯합니다. 죽음을 통해 생명, 궁극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깨우치려면 동물 한 마리 한 마리 생명의 소중함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희생된 동물이 우리와 다른 동물을 살린다는 순환 논리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죽음은 죽음 그 자체입니다. 한 번 죽은 그 생명은 다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작가는 생명을 개체가 아닌 집단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듯해요. 그리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이야기 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안락사 시키거나 도축장에서 가축을 도살하는 사람들에 대해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들 제도가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의 생명은 철저히 배제한 채 집단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동물보호를 이야기할 때에도 동물 한 마리의 기본권과 그 종의 보전을 동시에 이야기 하지요. 물론 해마다 급증하는 버려진 반려동물, 끊임없이 증가하는 고기의 소비량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이해도 갑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동물을 인간의 생명을 이야기 하듯 소중히 대하려 노력해야 이들의 죽음을 통해서 생명의 가치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야 작가가 이야기하는 죽음을 통한 생명의 실현이 진정으로 이뤄질 겁니다.

 

  작가가 계속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했기에 한 번쯤은 개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언급하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읽어갔건만, 끝내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이들 동물의 죽음은 필요한 것이니 솔직해지자며 학회에 참석한 수의사들을 독려하며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작가를 향한 심한 동조에서 시작해 불신으로 마무리되는 여정은 나와 같은 생각으로만 가득 찬 책보다 더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좋은 책이란 꼭 나와 마음이 맞지 않아도 되나 봅니다.

 

  한 가지 더. 책을 읽는 내내 자꾸 어릴 적 기억 속 숨겨진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숨겨진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당시 저희 가족은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똘이와 초파라는 반려견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분주한 아침, 초파가 현관에서 유난히 짖기 시작하더군요. 잠시 열어둔 현관문을 통해 똘이가 집을 나가 버린 겁니다. 부모님, 동생과 함께 서둘러 찾아봤지만 똘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죠. 등교 시간은 이미 두어 시간 훌쩍 넘어 버린 터라 저는 하는 수 없이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똘이를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온 동네를 수소문해 봤지만 소용없었죠. 부모님은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저는 도리어 화만 냈습니다. 한 생명을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을 괜히 부모님을 향해 표출하고 있었죠. 하지만 1, 2, 3,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덧 잔인하게도 그때의 아픈 기억은 서서히 아련한 추억으로 미화되더군요.

 

  그로부터 12년 후, 수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해 자축하는 의미에서 가족과 함께 외식을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지난 시절 함께했던 동물들을 함께 회상하던 중 똘이 이야기가 나왔지요. 저는 지금 똘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는데, 아버지께서 무심결에 똘이는 죽었잖아?!”라고 내뱉는 게 아니겠어요? 아버지를 쳐다보는 어머니와 동생의 시선에 이내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네. 똘이는 현관문을 나선 그날 세상을 떠났던 겁니다. 제가 학교에 간 후 부모님께서는 계속해서 똘이를 찾았는데, 결국 차에 치여 죽어있는 그 녀석을 발견했던 거지요. 부모님과 동생은 동네 뒷산에 똘이를 묻어주며 이를 제게 숨기기로 했던 거예요. 똘이는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하기로. 하지만 12년이란 세월은 숨기기로 했던 일조차 희미한 기억으로 만들어 버린 듯합니다. 아직도 아버지의 그 한 마디에 멍하니 하루를 보냈던 그날이 생생하네요.

 

  똘이의 죽음. 만약 숨겨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죽은 똘이보다는 인간 입장에서 그때를 추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군요. 작가가 말한 숨겨진 풍경은 이런 모순도 담고 있을까요?

 

 

 


 

참고 문헌 : 「숨겨진 풍경」, 후쿠오까 켄세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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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의사 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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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지 2012.08.22 0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어릴때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 후 너무나 상심이 커서 한동안 동물을 멀리했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고양이를 하나 키우는데요.

    사실 이별할 자신이 없어요.

    어떻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나요?

    • 수의사 연중 2012.08.22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이별을 준비하는데 과연 답이 있을까요.. ? 누구에게나 이별은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별은 정해진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동안 어떤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요. 이별을 포장할 수는 없잖아요.. 떠난 강아지가 님 마음 속에 별로 남아 있듯이 냥이와도 지금을 함께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 이별에 서툰 존재.. 에구.. 제가 주저리주저리 읊어봤네요.. ^^

  2. 박여정 2012.08.22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년을 함께 하고있는 내아들... 쭈렁이!
    언젠간 만나게 될 이별이 떠오르면 가슴이 덜컥 떨어지지만...
    그 생각할 시간에 한번더 사랑한다고 얘기하자...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이별... 준비라는게 가능하긴 할까요ㅠㅠ
    괜시리 센치해지네... 아자! 힘내자!

  3. 박채린 2012.10.11 1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중수의사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는지요? 소중이 소식도 궁금합니다.
    오랫만에 와 봤는데 요즘 바쁘신지 최근글이 없어요..ㅠ
    우리 뿌도 까만아이가 흰털이 몇개씩 나고...
    그저 무서워만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