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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태즈매니아 잔혹사, 인간과 동물의 절멸

 

그들은 태즈매니아 섬의 습하고 서늘한 기후 속에서 10,000여년 동안 고유의 역사를 간직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탐험가들의 전언과 사진에 불과하다.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Dowling_Natives_of_Tasmania.jpg>

 

  “그들은 적갈색 피부와 곱슬머리를 한 키 작은 사냥꾼이자 채집자였으며,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기질을 지녔다.” 16431124, 태즈매니아 섬을 처음으로 서구 문명에 소개한 네덜란드 탐험가 Abel Tasman은 위와 같이 원주민의 모습을 전했다. 아마도 이 전언을 그려본다면 위 그림과 같으리라.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태즈매니아 원주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바로 지구상에서 그 어떤 생명보다도 빠르게 절멸되었기 때문에.

 

  태즈매니아 섬은 호주대륙에서 남동쪽으로 약 2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본래 호주대륙의 일부였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약 10,000년 전부터 섬이 되었다고 한다. 10,000.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길고도 짧은 이 시간 동안 태즈매니아 섬은 습하고 서늘한 삼림 속에서 고유의 생태계를 이뤄왔다. 이 고유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동물이 바로 태즈매니아 원주민(Tasmanian Aborigines), 태즈매니안 타이거(Thylacine, Tasmanian Tiger), 그리고 태즈매니안 데빌(Tasmanian Devil)이다. 이 중 태즈매니아 원주민과 태즈매니안 타이거는 그 절멸이 역사를 함께한다. 그리고 태즈매니안 데빌은 이들의 길을 뒤따르고 있다.

 

  원주민도 엄연히 사람인데 대표적인 동물이라니, 아마도 이에 불쾌한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 아닌 존재를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그들과 다름없는 동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동물처럼 낮은 존재이며, 동물은 인간처럼 소중한 존재이다.

 

테즈매니아 데빌은 재미있게도 그 특이한 울음소리로 인해 데빌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2009년 멸종위기동물로 지정되었다.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Tasmanian_Devil_resting.jpg>

 

 

  유럽인의 정착이 시작된 1803, 당시 태즈매니아 원주민 인구는 5,000~10,000명으로 추정된다. 유럽인에게 원주민은 그들의 정착을 방해하는 적갈색의 미개한 야생 종족에 불과했다. 그들은 35,000년 전부터 그 땅의 주인이었음에도 유럽인으로부터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오히려 태즈매니아 섬을 장악하려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 속에 철저히 학살·박해·이용당했으며, 매독과 같은 유럽에서 건너온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이윽고 불과 30년 후인 1833, 태즈매니아 원주민 인구는 300명으로 급감한다.

 

  이때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선교사 조지 로빈슨(George Augustus Robinson). 로빈슨은 이대로 태즈매니아 원주민을 방치하면 빠른 시일 내에 절멸할 것이라 판단하고 인근 플린더스 섬으로의 이주계획을 세운다. 정착민에게도 로빈슨의 계획은 매우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대외적인 명분을 통해 태즈매니아 섬의 식민지화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정착민과 로빈슨의 의도는 달랐지만 플린더스 섬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으로 이뤄진다. 태즈매니아 원주민들은 전쟁과 질병을 피할 수 있다는, 그리고 정황이 안정되면 다시 태즈매니아 섬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배에 오른다.

 

  태즈매니아 원주민에게 로빈슨의 선의는 매우 절실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만다. 바로 그들의 문화를 철저히 폐기했으며, 서구 생활양식을 강요한 것이다. 로빈슨은 태즈매니아 원주민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자신들과 똑같이 입고, 말하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대항해시대의 여느 선교사가 그랬듯 로빈슨은 매일 원주민에게 그의 설교를 듣도록 했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에서 전하는 그때의 설교를 잠시 살펴보자.

 

  “주 하느님…… 착한 원주민, 죽은 원주민, 하늘로 가네…… 나쁜 원주민, 죽은 원주민,

   지하로 가네, 악한 영혼, 불구덩이에서 멈추네. 원주민은 울고, 울고, 또 울고……

 

  서로가 문화적 소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설교 또한 아주 원시적인 교리 문답의 되풀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사고와 생활양식을 강요받았다.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이주 11년 후인 1847, 태즈매니아 원주민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때 인구는 47.

 

 

마지막 남은 네 명의 태즈매니아 원주민들.

제일 오른쪽 여인이 바로 1876년에 숨을 거둔 투르가니니.

이 여성의 죽음을 끝으로 태즈매니아 원주민은 절멸한다.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Truganini_and_last_4_tasmanian_aborigines.jpg>

 

 

  위는 태즈매니아 원주민을 담은 단 한 장의 사진이다. 47명의 원주민이 태즈매니아 섬으로 돌아온 1847년 이후에 찍힌 사진이라 본래 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서구의 의복을 곱게 차려 입었지만 어색함만 느껴질 뿐이다. 오히려 이 사진은 매우 깊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바로 사진 맨 오른쪽 여성이 마지막 태즈매니아 원주민이기 때문이다. 투루가니니(Truganini)라는 이 여성의 죽음을 끝으로 태즈매니아 원주민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때가 1876, 유럽인의 정착이 시작된 지 고작 73년 만의 일이다.

 

  태즈매니아 원주민 역사의 마지막은 지구상에서 멸종된, 혹은 멸종위기에 처한 수많은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생태계를 급속도로 잠식해 왔으며, 단지 유희를 목적으로 동물의 생명을 앗아 왔다. 그러다 개체 수가 급감하면 그때서야 보전에 나서곤 했는데, 사실 멸종위기동물이란 개념이 생긴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잠1833년으로 돌아가자. 이때 로빈슨에 의해 플린더스 섬으로 원주민을 이주하는 과정은 오늘날 동물원과 매우 흡사하다. 로빈슨이 원주민을 삶의 터전에서 떼어내 낯선 환경에서 서구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살아가게 하는 모습은 종 보전이라는 허울아래 갖은 동물을 자연을 모방한 우리 안에 넣어 전시하는 동물원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동물원은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동물이 자연 상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동물을 가둬 기른다는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태즈매니아 원주민이 그 안에서 절멸했듯, 동물원 동물은 고통 받고 살아가고 있다. 결국엔 종 보전이라는 역할도 실패로 끝날 것이 분명하다.

 

 

                   Bag은 동사로 쓰일 때 사냥 등에서 동물을 잡다는 의미를 지닌다.

제목에 따르면 저 사람이 Mr. Weaver가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Bagged_thylacine.jpg>

  

 

  태즈매니안 타이거는 유럽인이 정착할 무렵 태즈매니아 섬에만 서식하고 있는 동물이었다. 태즈매니아 섬의 유대류(척삭동물 포유류에 속한 한 상목, 원시적인 태생 포유류로, 태반이 없거나 불완전하여 발육이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난 새끼를 육아낭에 넣어서 기른다.)는 호주대륙의 캥거루와는 달리 육식성을 지니고 있는데, 태즈매니안 타이거는 육식 유대류 중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이었다. 이 동물은 유럽인의 정착과 동시에 태즈매니아 원주민이 그랬듯 급속도로 죽어나간다.

 

  기록에 따르면 1830년부터 태즈매니아 타이거에 현상금이 걸렸다고 한다. 한 마리당 단돈 1파운드. 가축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였다. 지금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태즈매니안 데빌도 마찬가지 이유로 사냥 당했는데, 사실 가축에 피해를 준 장본인은 호주 대륙에서 건너온 야생 들개, Dingo였다.

 

  1930, 윌프 패티(Wilf Batty)라는 농부의 총성에 태즈매니안 타이거 한 마리가 목숨을 잃는다. 야생에서 목격된 마지막 태즈매니안 타이거. 몇 일 전부터 자꾸 농장 주변을 어슬렁거렸기 때문에 죽였다고 한다. 이윽고 1936, 호바르트 동물원(Hobart Zoo)의 태즈매니안 타이거, 벤자민(Benjamin)의 죽음을 끝으로 이 동물은 태즈매니안 원주민의 따라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태즈매니안 타이거 현상금으로 그 동안 지급된 현상금은 2,184파운드, 오늘날 우리 돈으로 400만원이 채 안 된다.

 

본 동영상에는 총 다섯 마리의 태즈마니안 타이거가 나오는데,

지구상 마지막 태즈마니아 타이거인 벤자민의 모습은 2분 05초부터 나온다.

<동영상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Thylacine_footage_compilation.ogv>

 

 

  오늘날 호주 정부는 태즈매니아 섬의 약 37%를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 Sites) 등으로 지정해 보전하고 있다. 태즈매니안 데빌은 태즈매니안 타이거가 절멸함에 따라 지구상에서 가장 큰 육식 유대류로 등극했다. 태즈매니아 섬에는 약 507,626(2011년 기준)이 살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서구인이다. 태즈매니아 원주민의 모습은 위 사진 한 장으로만 볼 수 있으며, 태즈매니안 타이거의 사진과 동영상 또한 몇 개만 남아있다.

 

 

  “성 차별은 공공연하게, 보편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차별이었으며, 이는 심지어 소수

   인종을 차별하는 편견으로부터의 자유에 오랫동안 자부심을 가져 왔던 자유 집단마저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형태의 차별이라고 이야기되었다.” - 피터 싱어, 동물 해방

 

  오늘날 종차별은 과거에 성 차별이 그랬듯,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동시에 마지막 형태의 차별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 내에서의 성·인종·종교 차별과 같이 인간 아닌 동물에 대한 차별 역시 철폐돼야 할 것이다. 태즈매니아 섬에서 동시대에 이뤄진 유럽인에 의한 태즈매니아 원주민과 태즈매니안 타이거의 멸종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간극이 우리가 생각하듯 그리 넓지 않음을 일깨워 준다.

 

  나는 우리가 인간 이외의 존재를 합당하게 대할 때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곧 우리의 인간성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성 차별이 당연시되었던 과거를 회상하듯, 종차별을 타파하고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찾아나서는 그날이 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참고 문헌

1.인간 본성에 대하여(에드워드 윌슨, 사이언스 북스)

2.The Fatal Impact(Hamish Hamilton, 1966) 

3.Into the Primitive Environment(Prentice-Hall, Englewood Cliffs, New Jersey, 1972)

4.Wikipedia for Tasmania, Tasmanian Aborigines, Tasmanian Devil, Thylacine

5.동물 해방(피터 싱어, 인간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