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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 기고문

 '길고양이에게 도심은 또 하나의 야생이다.' 아마 혹자는 굉장히 불편할지 모르겠다. 수 많은 고양이가 충분한 음식과 물, 그리고 아늑한 보금자리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도심이 또 하나의 야생이라니! 그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야생'은 본래 천국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의 희노애락이 담긴 곳이며, 우리는 길고양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할 때 이를 이해해야 한다. 

 수의사 국가고시 준비에 한창이던 3년 전 어느 겨울 밤. 갑자기 고양이 울음이 들려왔다. 고양이 울음이야 평소에도 가끔 들려오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다 큰 고양이 울음과 그 톤이 달랐으며, 한 마리가 내는 소리도 아니었다. 더구나 울음은 건물 안에서 들려왔다. 살며시 현관 문을 여니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하지만 잠시 후 문을 닫으려는 순간, 신발장 뒤에서 한 마디 울음이 들려왔다. 뒤를 넘어 보니 생후 4~5주령 정도로 보이는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떨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집은 상가건물 4층이다. 더군다나 현관까지는 계단 중간에 위치한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연약한 아기들이 홀로 여기까지 올라왔을거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어미는 어디 있을까. 아기들의 건강은 어떤가. 수의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을 앞둔 내게 지금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뜨거운 감성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 반면 차가운 이성은 마비되고 있었다.

 호기심에 아기들에게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하지만 세 마리 모두 나를 노려보며 심하게 하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인기척이 없을 땐 계속해서 울어댔지만, 지금처럼 인간을 극도로 경계할 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거란 생각은 곧 어미고양이에게 미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려가 보았는데, 건물 바로 앞에서 어미가 안절부절 서성이고 있는게 아닌가. 아마도 추운 날씨를 피해 아기들과 함께 올라온 후 잠시 외출한 사이 문이 닫힌 듯 했다. 아기들의 울음은 어미를 애타게 찾는 목소리였을 뿐 그들에게 난 낯선 침입자일 뿐이었다. 
 어미고양이는 건물 문이 열리자 오히려 자동차 밑으로 황급히 몸을 숨긴 채 경계하는 울음을 냈다. 아기들이 바로 저 위에 있는데 문이 닫혀버렸을 뿐 아니라 낯선 인간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개입을 피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따뜻한 꿀물과 담뇨를 아기고양이 곁에 두고 이곳으로 올라오는 모든 문을 열어둔 채 집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아기고양이 세 마리는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어미가 아기들을 데리고 다른 보금자리로 떠났으리라. 전날 밤 사건은 어미와 아기들 모두에게 이곳을 더 이상 아늑한 보금자리로 여기지 못하게 했을 터. 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가족의 앞날을 위협한 천적으로, 아니면 따뜻한 음식과 보금자리를 제공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을까. 꿀물을 남김없이 먹고 떠났음을 생각하면 그나마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기고양이에게 생후 첫 4~5주는 어미고양이의 젖을 먹으며 한창 사회화를 이룰 시기인데, 이 때 만약 잠시라도 사람의 손을 탄 후 도심으로 돌려보내진다면 생존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도심은 너무나 혹독한 야생이 아니던가. 결국 그 순간 최선의 결정이 이뤄지기 위해선 그 아기들을 평생 책임질 수 있냐는 질문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만약 평생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해 아기들을 집으로 들이면 어미와의 생이별은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그 순간 아기들이 가장 애타게 찾았던 건 어미이지 나, 심지어 따뜻한 음식과 보금자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따뜻한'이라는 표현은 정작 아기들보다 나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되돌아 본다. 그 순간 아기들, 어미 모두 서로를 필요로 했다.

  배고픔, 질병, 학대 등으로 고통받는 길고양이를 외면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길고양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할 때는 그들은 유토피아가 아닌 '야생'에서 살아가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도심은 어느덧 길고양이의 희노애락으로 가득찬 또 하나의 혹독한 '야생'이 되어 버렸다. 연민과 호기심만으로 가득차 길고양이에게 도움을 주려 할 때 우리는 그들의 야생에서 무서운 침입자로 돌변한다. 이 뜨거운 감성에 그들의 삶을 좀 더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차가운 이성을 더할 때 진실로 무엇을 해 줘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음이 최선일 수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개입은 동물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당화될 수 있을 때에만 신중히 이뤄져야 함을 배운지 2년이 흘렀다. 지금은 어느새 수의사가 되서 해군병원에서 의무복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2주전쯤, 2년 전 일을 다시 상기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한가로운 주말 군의관 당직실에서 있는데 한 병사가 고양이에게 물려 응급실에 왔다는 전화가 왔다. 수의사인 나는 사람 진료와는 관계가 없지만

동물에게 물렸다고 하니 궁금증이 생겨 응급의학과 군의관과 함께 응급실로 가보았다. 상처는 매우 깊었다. 정황을 들어보니 아기고양이에게 물렸다고 했다. 다들 알다시피 고양이의 이빨은 굉장히 날카롭다. 더욱이 아기고양이의 유치는 영구치보다 훨씬 더 날카롭기 때문에 아무래도 깊은 상처가 생긴 듯 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름 때문에 광견병을 개한테서만 감염되는 질병으로 알고 있지만 고양이를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물한테서도 감염될 수 있다. 고양이는 감염되면 사람을 물어 감염시키기 전에 죽어버릴 만큼 증상이 개에 비해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고양이에 의한 사람의 감염사례는 너구리나 개에 비하면 매우 적은게 사실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에선 아직까지 한강 이남으로는 광견병이 보고되지 않고 있으며 90년대 이후 사람 감염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양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광견병이 의심되면 사람을 물은 동물을 일정기간 격리시켜 증상발현 여부를 관찰하며, 해당 증상이 나타나면 그 즉시 사람에게 광견병 백신접종을 한다. 만약 물은 동물이 도망가거나 죽어서 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엔 그 즉시 백신접종을 하도록 되어 있다.)

병사 말에 의하면 군부대 내에서 근무하던 중 풀숲에 혼자 있는 아기고양이를 발견하여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데려온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함께 놀던 와중에 물린 것....;;

 


그리고 어제 일이다. 근무를 서던 중 사무실 밖으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와 나가보니 자동차 밑에서 위 아이가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병사들이 보더니 지난주에 병사를 물었던 바로 그 고양이라고 한다. 왜 그 아이가 여기 있냐고 물으니 군부대에서 군견 이외의 동물을 키울 수 없는 규정 때문에 결국 밖으로 다시 내 보내졌고, 그 이후에 매일 건물 앞에 나타나 배회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순간의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에 야생의 어린동물을 너무나도 쉽게 인간의 세계로 데려오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동물에게 느끼는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은 인간입장에서 보면 선의이지만 신중한 판단이 결여될 경우 동물의 입장에선 어쩌면 굉장한 악의, 즉 인간다운 생각일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철원 야생동물 보호센터에 실습갔을 때 야생동물 수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산에서 혼자 방황하는 새끼 고라니를 보고 귀여워서 집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고라니가 조금만 더 커서 감당이 안될 때 야생동물 보호센터로 데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끼 고라니든, 고양이든 보통 야생에서 혼자 발견될 때 어미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경우가 많다. 출산 이후 새끼를 돌보지 않는 어미도 가끔 있기도 하지만 일단 아이가 어느정도 컸다는 것 자체는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동시에 이는 아이가 보금자리 밖으로 갓 외출하기 시작할 시기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로 이 시기에어미가 잠깐 먹이를 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람들로부터 쉽게 발견된다. 사람들은 아이가 길을 잃어버리거나,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생각해 동물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없이 강제로 입양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말 그대로 납치인 것이다. 오히려 아주 어린 아기들은 보금자리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노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동물은 일단 어릴 때 무리에서 벗어나 사람의 손을 타게 되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갔을 때 급격히 생존할 수 있을 확률이 떨어진다. 사람의 손을 탔기 때문에 야생본능이 떨어질 뿐더러 야생의 기존 무리들은 한번 무리를 떠났던 동물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때문이다. 길냥이의 삶도 도시안에서 새롭게 구성된 철저한 야생이다. 결국 우리의 신중하지 못한 선택이 철저하게 소외되고 생활력없는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데려오지 않는 게 그 아이를 위한 행동일 수도.


군부대엔 굉장히 길냥이가 많다.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군부대에서 나오는 엄청난 음식물쓰레기는 길냥이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나름의 서열이 있다. 이곳 길냥이들은 종종 서열싸움을 하는지 몸에 상처가 굉장히 많다. 특히 보스 길냥이(우리는 짬타이거라 부른다.)는 온몸에 상처로 인한 흉터를 가지고 있는데, 얼마나 길냥이들 사이의 서열다툼이 치열한지 알 수 있다. 이 아기고양이는 이들 무리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식당 근처도 아닌 자신이 잠시 생활했던 건물 앞을 배회하고 있었고 지금 당장 뭐라도 먹이지 않으면 추운 겨울에 굶어 죽을 것만 같아 따뜻한 우선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사료를 주었으나 입맛에 안 맞는지 먹지 않아 술 안주로 챙겨놓았던 번데기를 줬더니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댔다.

"그래.. 번데기가 고단백 음식이니 도움이 되겠다" 싶었지요.


 


한창 번데기를 10개 정도 먹더니 어느새 실내에 적응하였는지 드러눕기도 앵기기도 한다.^^ 뻔뻔하기로 소문난 고양이가 10분도 안되 먼저 앵기다니 정말 배가 고프긴 고팠나보다. 하지만 곧 슬슬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에 밖으로 다시 나간다면 이미 사람 손을 탄 아이라 굶어 죽기 십상인데 어떻게 해야할까... 하지만 야생의 본능도 남아 있어 어느 집에서나 쉽게 적응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사무실에서 키우는 것도 규정에 어긋나고 내 반려묘인 소중이도 이 때문에 지금 서울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있어 이 아이를 내가 키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고민하던 와중에 다행히도 옆 사무실 사람이 데려가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것저것 챙겨주어 아이를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 야생과 반려의 습성이 강하게 동시에 존재하는 이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혹시나 파양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처음 병사들이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길냥이 무리에서 건강히 살았갔을지도



독자께서 혹시 헤매고 있는 길냥이를 발견했을 땐 데려오기 전에 꼭 한번 더 신중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내 앞에 있는 길냥이의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길 바란다. 따뜻한 보금자리와 음식이 없어 고통받는 길냥이들에게 이를 제공하는 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생각이 입양까지 미쳤을 땐, 정말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내 입양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선택일 수도, 아니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고민해도 그들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없다. 하지만 뜨거운 마음에 차가운 이성이 함께한다면 길냥이를 위한 우리의 마음이 꼭 의도한대로 이뤄지리라 믿는다.


인간의 "따스함",

때론
동물에게 단지 "이기심"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