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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혈액검사, 정맥주사와 관련된 불편한 진실

미야옹. 수의사 연중입니다! 


반려동물이라면 한 번쯤 혈액검사 또는 정맥주사의 경험이 있을겁니다. 혈액으로부터 각종 정보를 얻기 위한 혈액검사, 각종 약물의 신속한 투여를 위한 정맥주사는 반려동물 진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항목이지요. 하지만 이 혈액검사와 정맥주사 과정 속에는 <보호자 - 반려동물 - 수의사>사이에 현존하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습니다. 

혈액검사와 정맥주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맥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반려동물에서 혈액검사를 위한 채혈(피를 얻는 과정)시 보통 목의 경정맥(Jugular vein)을 이용하며, 정맥주사 때는 앞발의 요측피정맥(Cephalic vein)과 뒷발의 복재정맥(Saphenous vein)을 이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혈관을 찾고 주사바늘을 이용해 접근하는 과정을 속칭 "혈관을 잡는다"고 표현합니다. 바로 이 혈관을 잡는 과정에 오늘 논의할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반려동물에게 혈관을 잡을 때 가장 큰 사람에서와 차이점을 무엇일까요? 아마도 피부를 덮고있는 두터운 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두터운 털은 혈관을 잡는데 아무래도 큰 지장을 줍니다. 따라서 수의사가 혈관을 잡는데 숙련되지 못하거나, 혹은 해당 반려동물의 움직임이 많거나 혈관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수북히 덮힌 털 안의 혈관을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혈관이 터지고 반려동물은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이 스트레스로 인해 반려동물의 움직임은 더욱 심해져 결국 혈관을 잡기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셈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수의사는 경험이 쌓이면서 혈관을 아주 쉽게 잡곤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어떨까요?!

피부에 존재하는 두터운 털은 혈관 채혈, 혹은 정맥주사시에 감염의 위험성을 크게 증가시킵니다. 수의사가 혈관을 잡기 전에 충분히 소독을 하더라도 여전히 털이 존재하는 상태에선 여전히 감염의 위험성이 여전히 존재하는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Textbook of Veterinary Internal Medicine>에서 Harold Davis는 혈관을 잡을 때 지켜야할 기본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저술합니다. 


All venipunctures (and arterial punctures) must be done aseptically.
The hair should be clipped and the skin prepared with antiseptic solutions as if for surgery

모든 정맥에 대한 접근은 무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혈관부위의 털은 깍아내야 하며 피부는 수술시에 준하는 소독과정을 거쳐야 한다.


'must be' 'should be'와 같은 표현을 써가며 혈관을 잡을 때 꼭 무균원칙을 지켜야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혈관부위의 털을 모두 밀어야함은 물론 특히 수술시에 준하는 소독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함은 얼마나 혈관을 잡을 때 무균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줍니다. 다음 링크는 미국의 한 동물병원(SingingHills Vet)에서 준비한 동영상입니다. 원리원칙을 지켜가면 혈관을 잡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이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동영상의 앞 40초까지는 꼭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혈관 잡는 모습 : http://www.youtube.com/watch?v=rLMfOBu4LWo


말끔하게 털을 밀어낸 피부에 여러번 소독과정을 거치는 것을 보셨나요? 또렷히 보이는 혈관을 독자께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처럼 털을 깔끔하게 밀어낸 후 확실한 소독과정을 거치면 감염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혈관을 빠르고 안전하게 잡을 수 있어 반려동물의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호자께서는 위 과정을 거치지 않는 수의사를 '경험있는 수의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털에 덮혀 잘 보이지 않는 반려동물의 작은 혈관을 한번에 잡아내는 일은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우리 인간 중심적인 관점입니다. 비록 털을 밀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병원에 오기 전과 같은 상태로 아이와 함께 돌아갈 수 있으며 혈관을 한번에 잡아내는 믿음직한 수의사를 만난 듯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사실 이는 허황된 착각일 뿐입니다. 

수북한 털 안에서 다음과 같이 혈관에 접근하는 것이 과연 안전할까요?
<사진 출처 : http://loudoun.nvcc.edu/vetonline/vet121/IVtechniques.htm>

도대체 털을 밀지 않은 것이 감염의 위험성과 비교했을 때 무슨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한번에 혈관을 잡지 못해 혈관이 터진 경우 감염의 위험성과 반려동물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그때서야 결국 털을 밀고 혈관을 잡기도 합니다.

 

이처럼 털을 밀면 감염의 위험성을 크게 낮아집니다. 그래도 보기 싫으신건 아니지요?
<사진 출처 : http://www.flickriver.com/photos/priority_pet_hospital/popular-interesting/>

수의사는 수의과대학, 그리고 2차 동물병원에서의 수련시절 털을 밀고 혈관을 잡는 것이 기본원칙임을 수도 없이 배우지만 마치 본인이 '경험없는 수의사'처럼 보일까봐 털을 밀지 않고 혈관을 잡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행이 형성된 건 수의사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자의 잘못된 기대에 따라 털을 밀지 않고 혈관을 잡기보다는 끊임없는 보호자교육을 통해 올바른 믿음이 보호자에게 심어지도록 하는 것이 수의사의 책임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러지 못한 수의사의 모습이 또다시 보호자의 잘못된 믿음을 강화하고 퍼뜨리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제 = "털은 왜 미셨어요, 보기 흉하게!"
오늘 = "털 꼭 밀어주세요, 아이를 위해!"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위 기본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해당부위에 피부병변이 있다거나, 위급상황, 야생동물진료 등과 같은 예외상황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혈액검사, 정맥주사를 위할 때는 반려동물을 위해 털을 꼭 밀어줘야 합니다. 

요즘에는 그래도 대학동물병원, 2차 동물병원을 중심으로 많은 동물병원에서 꼭 이러한 기본원칙을 지키는 진료문화가 퍼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실력있는 수의사는 단순히 수북한 털 안에서 혈관을 찾아내는 기교보다는 반려동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는 수의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강남의 한 2차 동물병원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우연찮은 기회에 일본의 저명한 슬개골탈구 전문 수의사이신 나가오까 선생님의 수술 시 곁에서 마취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수술실 안에 너무 더워 선생님께서는 땀을 뻘뻘 흘리시며 수술을 하고 계셨는데, 한 수의사가 에어컨을 키려고 하자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난 괜찮소. 마취 상태인 아이한테는 오히려 더운게 좋을듯 하구려" 


우리 모두 한번 더 반려동물의 측면에서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합시다. 모든 보호자들께서 털을 밀고 혈액검사와 정맥주사를 실시하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고 바른 과정으로 여기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번 방문시에는 꼭 털을 밀어달라고 수의사에게 말씀하세요. 크게 반기실겁니다.^^ 


실력있는 수의사는 기교보다는 반려동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알림 : [수의사 연중, dralways.tistory.com] 블로그에 있는 모든 내용은 반려동물의 건강관리와 의학적문제에 대한 교육적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든 내용은 수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대체할 수 없음을 명심하시고 독자의 반려동물이 아플 때에는 꼭 수의사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Textbook of Veterinary Internal Medicine by Ettinger and Fel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