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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찬 일상

청림동 다섯 강아지

 

 

 

경상북도 포항시 청림동은 대규모 제철·화학공단과 해병대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 이곳은 제게 공단으로부터 하염없이 피어오르는 매연과 군대라는 조직의 삭막함에 억눌린 인상을 줍니다. 말 그대로 메마른 이곳에서는 시골마을의 아기자기함도, 도시의 화려함도 찾아볼 수 없지요. 포항은 아직도 제게 낯설어요. 지난 2년을 보낸 진해가 항상 그리웠고 주말이면 서울로 도피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내달이면 포항을 떠납니다. 단기복무를 하는 군인이라면 누구나 하루라도 빨리 전역 날을 기다릴 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군 생활의 마지막이 될 포항, 그 중에서 특히 청림동을 그냥 이렇게 떠나면 안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일까. 저는 요즘 무작정 청림동 길을 걷습니.

 

 

 

 

 

여느 때처럼 의시적으로 길을 걷던 어느날, 멍하니 홀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새끼강아지와 마주쳤습니다. 본래 하얀 아이지만 연탄, 흙에 온 몸이 새깜댕이. 길고양이도 마찬가지지만 길에서 새끼강아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호기심에 녀석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녀석은 저를 보더니 담도 문도 없는 허름한 가옥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가옥 마당의 조그마한 돌담이 녀석에게는 버거웠는지 한참을 넘어가지 못하네요. 아이야, 해치려는 게 아니란다.

 

 

 

 

 

아니 웬걸,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깜장 새끼강아지 두 마리가 마치 녀석을 보호하려는 듯 달려왔어요. 녀석에 비해 건장하고 늠름한 아이들. 깜장 새끼강아지들은 녀석에게 따라 해 보라는 듯 마구 돌담을 넘나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녀석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네요.

 

 

 

 

 

 

'나 처럼 뛰어오르면 되! 자, 같이 해보자!'라는 듯 깜장 새끼강아지는 녀석을 챙깁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이들은 한 배에서 나온 새끼강아지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체격 차이가 너무 났습니다. 그렇다면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 이 초라한 곳에 어떻게 이 연약한 녀석들이 살게 되었을까. 궁금함이 점점 커졌습니다. 

 

 

 

 

 

 

돌담 바로 옆 가옥 마당에는 다른 새끼강아지들도 있었습니다. 처음 본 녀석까지 모두 다섯 마리였지요. 녀석들은 허름한 개집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개집에는 담요하나 놓여있지 않았고, 밥그릇에는 먹다 남은 사람음식이 가득했지요. 가장 중요한, 어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된 아이들일까.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 녀석들을 보살피는 분은 어떤 분일까. 이런저런 상념에 휩싸인 채 저는 그곳에서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당황했던 것이지요.

 

 

 

 

 

 

잠시 후 한 할머니께서 가옥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담도 문도 없는 가옥이지만 낯선 남자가 마당 한가운데 들어와 있으니 놀라실 법도 한데, 할머니께서는 제게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다섯 새끼강아지가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여쭤보았죠.

 

 

 

 

 

 

원래 이곳에 살던 개가 어느 날 집을 나갔다 며칠 만에 돌아왔는데 얼마 후 출산을 하더랍니다. 출산 때 새끼강아지는 모두 일곱 마리였다고 해요. 그 중 한 마리는 안타깝게도 세상 빛을 보자마자 숨을 거뒀다 합니다. 그런데 웬걸, 남은 새끼강아지들이 한참 커가야 할 시기에 어느날 어미와 새끼강아지 한 마리가 사라져 버렸다지 뭡니까. 할머니 표현대로라면 배은망덕하게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집을 나갔다'라…. 제 짧은 추측으로는 담도 문도 없는 가옥의 환경도 한 몫을 한 듯 합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어미는 보통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잠깐 새끼강아지와 함께 골목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 같았죠. 아니면, 저처럼 쉽게 낯선 이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니 정말 못된 이가 나쁜 목적으로 훔쳐간 거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지금 환경은 남아 있는 다섯 새끼강아지들에게도 분명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할머니께 다섯 새끼강아지를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대뜸 '내가 먹여 살려야지 어쩌겠어. 하나 키우나 다섯 키우나 돈 드는 건 똑같아. 저리 어울려 지내니 좋기도 하고! 나중에 울타리 쳐서 뛰어놀게 해야겠어. 또 없어지지 않게 말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분명 다섯 새끼강아지는 어미가 없을 뿐더러 더러운 환경에서 먹다 남은 사람음식을 먹으며, 적절한 의료서비스도 없이 살고 있었죠. 우리의 반려동물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저는 할머니와 다섯 강아지가 행복해 보였을까요. 왜 그 모습에서 우리가 오늘날 잃어버린 무언가를 느낀 걸까요. 그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똑같은 상황에서 저는 할머니처럼 대번에 대답할 자신이 없다는 겁니다. 양질의 사료, 넓은 공간 등 반려동물과 함께하기 위해 필요한 책임을 입버릇처럼 내뱉던 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생명을 향한 사랑에는 정작 자신이 없었던 거지요. 반려동물과 함께하기 위한 구색을 외치다 중요한 무엇을 잃어버린 거였습니다. 생명을 위한 사랑은 책임에 선행되야 하며, 그 사랑은 인간 이외 존재를 향한 이해와 관심이면 누구나 함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할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녀석들을 므흣하게 바라보는데 자꾸만 아까 처음 만났던 녀석이 눈에 밟힙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무척이나 외소했던 그 아이 말이지요. 할머니께서 준 음식에 다른 네 마리 새끼강아지가 달려들 때 녀석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합니다. 저는 할머니께 걱정스레 물었지요. "할머니, 저 아이는 특히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외소한데 그러다보니 음식 먹는데도 자꾸 다른 아이들한테 치이네요" 할머니께서는 "저 녀석이 처음 나온 놈이야. 태어날 때부터 워낙 작았어. 다른 녀석들한테 뱃속에서부터 양분을 다 빼앗겼나봐. 일곱 마리나 임신했으니 할 말 다했지. 잘 챙기고 있으니 걱정말게. 체구가 작지 지금 배는 빵빵해"라고 하시네요. 앞으로 종종 들려 녀석 건강을 챙겨야겠어요. 한 달 후면 포항을 떠나지만 한창 성장기인 지금 한 달 동안이라도 건강히 성장하면 문제없지 않겠어요? 

 

 

 

 

 

 

녀석 이름을 뭘로 하면 좋을까요? 슬픈 표정을 밝게 바꿔주고 싶은데, 입에 착착 감길만한 이름이 잘 떠오르질 않네요. 여러분의 의견부탁드립니다.

 

 

 

 

 

우걱우걱 할머니가 던져준 음식을 마구 먹어대는 네 마리를 녀석은 개집 안에서 멀찍이 바라만 봅니다. 하루라도 빨리 건강히 성장해서 다른 녀석들과 활발히 어울려야 할텐데. 다시 한 번 할머니께 관심 좀 가져달라고 말했지만, 옛날 분이라 그런지 아니면 제가 하루만 봐서 그런지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잘 먹고 잘 논다'는 말만 되풀이 하십니다. 그래도 정성스레 아이들을 보살피는 할머니가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처음에는 무심한 보호자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새끼강아지들인 줄 알았지 뮙니까. 비록 우리 반려동물만큼 생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반려동물이라는 틀에 속박된 채 생명을 생명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허울 뿐인 모습보다는 할머니와 다섯 새끼강아지의 모습이 제게는 더 따스해 보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다시 녀석들을 찾아갔습니다. 다음 포스팅을 기대해 주세요!  

 

아, 이름 지어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