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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찬 일상

부끄러운 수의사, 진정한 의사를 보다.

  진해는 남쪽으로 드넓은 바다, 북쪽으로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산을 면하고 있는 도시다. 그 중 군항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특히 높고 울창한데, 이 때문에 진해가 대한민국 해군의 요충지로 선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군사지역인지라 민간인 출입은 철저히 제한되었고 보초를 서는 군인만 드물게 오갔는데, 마치 비무장지대와 같은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레 야생동물에게도 천혜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렇게 야생동물이 많은 곳이다 보니 이곳 진해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에겐 야생동물과 얽힌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주위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다람쥐나 꿩은 물론, 어쩔 땐 너구리도 볼 수 있었다. 그 중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깊게 남는 야생동물은 고라니와 멧돼지였다. 이들은 풍족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한겨울엔 먹이를 찾기 힘들었는지 산 밑 군부대로 내려오곤 했다. 한밤중에 건물 뒤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멧돼지와 마주했다는 경험을 전해들을 때면, 한편으론 오싹하면서도 오죽 배가 고팠으면 이곳까지 내려왔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곤 했다. 그들도 사람이 두려웠을 텐데 말이다.

 

  지난 3년의 군 생활을 되돌아보면, 내게도 야생동물과 관련한 한 가지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추억보다는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온다. 무지를 동반한 용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단순한 무모함이나 이기심이었을까.

 

  추위가 막바지 맹위를 떨치던 어느 겨울날, 인근 부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 대위님, 수의사 맞으시죠? 근처 도랑에 고라니 한 마리가 빠져 있는데, 도무지 움직이질 않네요. 아마도 밤새 그곳에 있었던 모양인데. 혹시 이곳으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고라니.’

 

 

  그 전화를 받았을 때 내 마음은 설렘과 망설임이 동시에 교차했다. 고라니는 직접 진료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학부생 때 철원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어깨 넘어 고라니를 치료하는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어느덧 나는 쓰러져 있는 고라니를 도울 수 있는 군항 내 수의사는 나뿐이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고라니는 다행히도 따뜻한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차디찬 도랑에서 시름하고 있는 모습을 차마 보다 못해 사람들이 꺼내 올린 거였다. 당시 고라니는 두터운 군용 담요에 덮여 있었는데, 어찌나 작던지 몸 전체가 담요에 덮여 얼굴만 살짝 나와 있었다. 말 그대로 새끼 고라니였다. 나는 담요 채로 그 아이를 구급차에 실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진료실로 향했다. 구급차에서 고라니가 내리니 사람들은 다소 신기해하면서도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도 출발하기 전에 난방을 틀어놔 방은 다소 덥게 느껴질 정도로 덥혀져 있었다. 새끼 고라니를 조심스레 눕히고 담요를 걷자 앙상한 몸이 여실히 드러났다. 고목처럼 앙상하게 마른 네 다리, 고스란히 드러난 갈비뼈, 움푹 파인 눈은 이 아이에게 이 추운 겨울이, 그리고 특히 도랑에서의 어젯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

 

 

. 이제 어떻게 한담?’

 

 

  새끼 고라니를 황급히 병원으로 데리고는 왔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야생동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수의대 시절, 야생동물의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반려동물·산업동물 중심의 수의대 수업에서 야생동물은 도리어 내게 이질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즉 일반 수의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또 해서는 안 되는 대상으로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내 앞의 야생동물을 책임질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내가 수의사라면 모든 동물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환상에 빠져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를 동반한 무모함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고라니가 병원에 왔다는 소문에 몇몇 군의관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찾아왔다. 의사인 그들에게 야생동물 진료는 신선하게 다가왔을 터. 평소 형, 동생하며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지만 동물 앞에선 한 명의 실력 있는 수의사로 보이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아이의 신체검사를 하나하나 진행했고, 이내 수액처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애써 자신 있는 체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내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안 그래도 겨우내 잘 먹지 못해 몸 상태가 좋지 못한데, 어제 도랑에서 밤새 빠져나오려다 탈진상태에 빠진 듯해요. 수액 주고 기운 차리면 다시 방사해도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우선은 지금 아이가 극도로 긴장한 상태니 진정제를 좀 주도록 할게요.”

 

  아무리 야생동물에 문외한인 수의사라도 야생동물에겐 사람과 함께 있는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정도는 안다. 따라서 진정제를 줘서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이는 아이의 움직임을 최소화해 수액을 주기 위한 혈관을 잡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진정제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느새 나는 어린 생명을 내 손으로 직접 구할 수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찼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군의관들 앞에서 어깨가 으쓱했음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뒷다리에 진정제를 놓은 뒤, 앞다리 혈관을 잡아보려 했으나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아이가 탈진상태이니만큼 어느 정도 어려움은 예상했지만 주삿바늘은 계속해서 피부에 상처만 낼 뿐이었다. 십 분쯤 지났을까, 옆에서 묵묵히 이를 지켜보던 치과 군의관이 내게 어렵게 말을 건넸다.

 

   연중아, 마취과 헌주에게 한 번 연락해 보는 게 어떨까? 비록 헌주가 수의사는 아니지만 마취과 의사라 혈관 잡는 데는 귀신이잖아. 아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서 그래. 더 이상 지체되면 안 될 것 같은데.”

 

  순간 뜨끔했다. 말은 안했지만 나는 혼자서는 도저히 혈관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이미 마취과 전문의인 헌주 형 생각도 스쳐간 터였지만, 내 사소한 자존심은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치과 군의관은 필히 내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을 터. 어엿한 수의사 행세를 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초조하게 움츠러들었다. 내게 이 아이는 벅찬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헌주 형뿐만 아니라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에도 연락을 취했다. 야생동물구조는 구조원이 야생동물을 구조해 지자체 연계 동물병원에 인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당시에는 가용 가능한 인력이 부족해 두 시간 뒤에나 이곳으로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야생동물이 많은 듯 보였다.

 

  다행히도 헌주 형은 얼마 안 되어 도착했다. 그는 막 정형외과 수술 마취를 보고 온 터라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도착하자마자 혈관을 잡으려 시도했다. 동물, 특히 고라니는 그에게 나보다도 훨씬 생소했을 테지만, 그의 주삿바늘엔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단 한 번에 혈액이 맺혔다. 주위 사람들 모두 역시 마취과 의사는 다르다며 헌주 형을 치켜세웠다.

 

 

수의사가 동물 혈관 하나 잡지 못하고 의사에게 부탁하다니.’

 

 

  나는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한편으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헌주 형은 내게 따스한 말을 전했다.

 

  “수의사는 참 힘들겠어. 피부가 수북한 털에 덥혀있을뿐더러 아이가 탈진상태니 혈관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 마치 눈감고 신생아 혈관을 잡는 느낌이었어. 연중아, 형이 이번엔 운이 좋았어. 이 녀석 건강히 회복하면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형이 살게!”

 

나는 그에게 고마우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고마워요 형. 이 아이가 건강히 회복하면 다 형 덕분일 거예요. 아까는 어찌나 당황했는지. 마취과 의사가 역시 다르긴 하네요. 밥은 제가 사야죠!”

 

  이런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내게는 약간 어색했던 대화가 오가는 사이 새끼 고라니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써 일어나 보려 했지만 이내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본래 미동도 않던 아이라 수액 덕분에 기운을 차리나 싶었지만 웬걸, 도리어 수액이 더 이상 들어가고 있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방금 움직임으로 인해 혈관이 막힌 듯 했다. 어떻게 잡은 혈관인데.

 

  이후 30여분이 흘렀지만, 나와 헌주 형은 혈관을 다시는 잡을 수 없었다. 한 명은 다리를 잡아주고, 다른 한 명은 주삿바늘을 찔러 보길 번갈아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혈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자취를 감출 뿐이었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어느덧 우리 이마에는 땀방울이 굵게 맺혀 있었다. 그런데,

 

 

연중아, 너 팔!”

 

 

  으악! 웬 포동포동한 진드기 한 마리가 내 살을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핀셋으로 녀석을 떼어내었다.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났을까.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새끼 고라니에게로 향했다. 엄지 손톱만한 진드기 수십 마리가 스멀스멀 두터운 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동안 아이는 제대로 먹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무시무시한 기생충들로부터 철저히 혹사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신선한 새로운 숙주를 찾아 무리지어 기어 나오고 있었다. , 자연의 본능에 따르면 새끼 고라니는 죽어가고 있던 거였다.

 

  순간 멈칫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더 이상 아이를 만지기 싫었다. 진드기라면 쯔쯔가무시를 비롯한 각종 인수공통감염병의 온상이 아니던가. 진드기가 이렇게 많은 아이라면 옴, , 벼룩 등 각종 기생충이 있음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 고라니 앞에서 내 몸부터 사렸던 것이다. 어느덧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혈관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는 헌주 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데 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이 아이가 심각한 탈진상태였다 하더라도 이렇게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다니. 더구나 비록 새끼였지만 개와 고양이보다는 큰 고라니가 아니던가. 혈관을 찾기가 이렇게 힘들 순 없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진 정 제.’

 

 

  처음 이 아이에게 주었던 진정제가 뇌리를 스쳤다. 진정제는 그 종류가 다양해 상황에 맞는 약물을 선택해야 하는데, 내가 사용한 진정제는 Acepromazine이라는 약물로 동물병원에서 널리 쓰이고 있지만 탈진상태와 같이 저혈압이 우려되는 환자에서는 금기시 되고 있다. 그렇다. 내가 준 바로 그 진정제는 새끼 고라니에게 절대 써서는 안 되는 약물이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혈관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아이 전체 상태를 악화시킴은 물론이거니와.

 

   연중아, 아직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오려면 시간이 좀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시도해 보자. 진드기는 나중에 이 아이 살리고 걱정해도 늦지 않아. 아이가 점점 안 좋아 지는구나. , 다시 한 번 다리 좀 잡아 줄래?”

 

  다리를 잡은 채 나는 아무 말 없이 헌주 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상식적인 부분을 왜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까이미 진드기 몇 마리가 헌주 형의 팔을 탐닉하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연약한 생명을 살리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나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의사는 동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수의사는 포기하고 있었다.

 

   헌주 형, 사실 제가 아까 형 오시기 전에 Acepromazine을 줬어요. 아마 그 때문에 아이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진 것 같아요. 혈압을 올리려 해도 수액을 준 뒤에야 가능할 텐데, 도무지 방법이 보지질 않아요. 아마도 제가 이 아이를 죽일 것 같아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실수를 했건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겐 지금 이 새끼 고라니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 보였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는데, 내게는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한 명의 수의사로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똑똑히 목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야생동물구조센터 구조원이 도착했다. 우리는 황급히 새끼 고라니를 실어 보냈는데, 후에 구조원의 말에 따르면 가까스로 혈관을 잡아 수액을 주었으나 두 번째 수액을 줄 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동물병원에서 내린 사인은 Cachexia, 즉 전신의 영양 불균형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한 표면적인 사인은 내게 의미가 없었다. 내 앞의 동물을 책임질 수 있는지 명확히 판단하지 못한 채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빼앗고 오히려 잘못된 치료를 했으니, 이는 살인과 다름없었다. 즉 내가 아이를 죽인 것이다.

 

  이제까지 내게 훌륭한 수의사란 그 앞의 모든 동물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유능한 어떤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리 생각한다. 진정으로 훌륭한 수의사는 바로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자이다. 그 앞의 동물이 자신의 능력에 안에 있으면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고, 밖에 있다면 적절한 치료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함은 바로 자신을 포기할 줄 아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당시 헌주 형은 진정으로 새끼 고라니만을 위하고 있었지만, 나는 새끼 고라니를 치료하고 있는 나를 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아집, 오만, 그리고 이기심은 나로 하여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Acepromazine의 그토록 상식적인 금기사항도 잊을 정도로.

 

  어쩌면 아주 간단하고 당연해 보일 수 있는 이 진리를 나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한 소중한 생명을 대가로 깨달았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헌주 형은 내게 입을 열었다.

 

   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거야. 우리도 인턴, 레지던트 때 수많은 실수를 겪고 온전한 의사로 성장하는 걸. 너무 자책마라. 다시는 안 그러면 돼.”

 

다시는 안 그러면 돼.’ 물론 Acepromazine을 사용할 경우나 탈진환자, 혹은 고라니를 다시 만날 때 내가 그날의 경험을 통해 좀 더 기술적인 대처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를 포기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나는 닮고 싶었다. 그것이 다시는 생명을 담보로 한 배움을 반복하지 않는 길임을 알았기에.

 

  이듬해 나는 헌주 형 결혼식 사회를 보았다. 내가 만난 그 어느 의사보다도 따뜻한 생명에의 존중과 사랑을 간직한 헌주 형. 나는 오늘도 그를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올리는 2012년 08월 14일 오늘, 헌주 형 가정에 어여쁜 딸이 태어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헌주 형 부부와 그 따님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