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Whitehead)란 이름 그대로 녀석은 흰 머리를 가지고 있다. 작은 벌레 한 마리를 맛있게 먹는 순간 포착! '띠리띠리 마땅키'의 울창한 원시림은 새들엑 풍성한 먹이를 제공학 있었다.

 

105일간의 세계동물조우기록 3.뉴질랜드, 호주, 파푸아뉴기니

생명을 고민하며 우리를 돌아보다

 

나는 왜 동물이야기를 할까

뉴질랜드로 향하던 어느 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나를 깨운 건 어떤 소리도 움직임도 아닌 고요였다. 모두가 적막에 취해 잠든 새벽녘, 홀로 갑판에 나선 내게 바다는 지금껏 꼭꼭 숨겨두었던 얼굴을 내밀었다. 바다의 민낯이라고나 할까. 우리 배는 비단결 물살을 가르며 파도도, 바람 한 점도 없는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기상학적 적도, 바로 모든 기후가 평형을 이루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바다는 고요할 때 가장 장엄하다는 걸 나는 그날에야 알았다.

 

광활한 바다를 보며 '그동안 기항지에서의 시간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만약 배가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배를 탔건 안 탔건 큰 차이가 없기를 간절히 원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그 선택이 실패했을 때, 혹은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는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변함없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중요한 그저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아닌 듯했다. 아무리 배를 타고 세상을 본다 하더라도 작은 경험 하나하나를 자신만의 무엇으로 가져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생각에 얿매여 지쳐가고 있었다.

 

당시 나는 배의 비좁은 철제 침상에 틀어박혀 지난 경험이 주는 의미를 도출하려 애쓰고 있었다. 어떤 기억은 당시보다 강렬해지고, 또 어떤 기억은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혹은 내 마음이 원하는 모습대로 왜곡된 기억도 있었다. 너무나도 다른 두 대륙, 특히 그곳 동물들의 삶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알던 동물은 도리에 예전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이러한 막막함은 내 강박적인 성격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떤 정답을 찾으려는 고집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알면서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군복무를 시작한 이후 어느덧 책장에는 동물복지와 관련된 책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쩌다 동물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끔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수의사이기 때문에 동물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내게 있는 건 아닐까. 이상적인 수의사의 틀에 스스로를 억지로 끼워 넣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순수하게 동물을 위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이내 작아졌다. 지난 105일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항해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발버둥 쳤던 의식적인 노력이 순수함이 아닌 욕망의 발로일 수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남은 기항지에서 나의 이러한 성향은 좀 더 명확히 드러났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진국인 뉴질랜드와 호주, 그리고 세계 최빈국인 파푸아뉴기니에서 나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동물이 아닌 사람을 대할 때도 이는 정확히 드러났다. 말끔한 서구인과는 말 한 마디라도 더 하려 애썼던 반면, 파푸아뉴기니 의료봉사 때는 사람을 먼저 위하기보다 설마 결핵이 내게 옮지는 않을까 매순간 마스크를 다시 쓰기 바빴다. 사람도 차별하던 내가 어찌 모든 동물을 소중하게 바라보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할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온 오늘도 동물복지를 외칠 때마다 모순된 나를 목도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왜일까….

 

 

케레루(Kereru)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비둘기다. 가끔씩 케레루가 큰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는데, 정말이지 멧돼지라도 뛰쳐나오는 줄 알았다.

모든 기후가 펴연을 이룬 기상학적 적도. 이때의 바다를 보고 있자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실제 옛날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고 한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걸까.

뉴질랜드와 호주의 공원에서는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공원이 인위적인 녹지를 넘어 하나의 자연생태곌 보호되고 있으을 의미했다.

랑기토토 섬은 호주에서 건너온 들쥐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철저히 과괴된 과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섬 곳곳에는 외래종의 번식을 막기 위한 덫이 설치돼 있었다.

 

자연을 보전하기 위한 착한 개입

뉴질랜드와 호주 입항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격한 검역이 문제였다. 외국으로부터 위험한 질병이나 동식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행해지는 검역, 이 절차의 무사통과는 이번 여정 동안 내가 맡은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이전 기항지까지는 검역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군함이라는 특수성이 이점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검역이 허술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호주에서의 검역은 이전 기항지와는 분명히 달랐다.

 

뉴질랜드 입항 날, 우리 배에 뉴질랜드 검역관이 승선했다. 제출된 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던 그는 첫 기항지인 러시아에서 받은 방역확인서를 요구했다. 방역확인서라니 당혹스러웠다. 가지고 있는 방역확인서라곤 한국에서 받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9월은 러시아에서 중국매미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라 이때 러시아를 방문한 배는 모두 출항 전 러시아 검역원으로부터 방역을 받도록 되어 있단다. 검역관은 그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우리 배는 러시아에서 어떠한 방역도 받지 못한 터였다. 아무래도 민항이 아닌 군항에 입항한 터라 러시아 해군과 검역원 사이에 사전 조율이 부족했던 듯했다. 나는 검역관에게 우리 배가 군함이고 중국매미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사정할 뿐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는 우선 배를 둘러 본 후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모든 레이더 작동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중국매미는 배에서 주로 레이더에 알을 깐단다. 나는 서둘러 지휘부에 레이더를 멈춰달라고 했다. 그들도 나처럼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작 벌레를 보기 위해 군함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다니, 승조원 모두에게 레이더에 오르는 검역관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검역관은 군함 가장 꼭대기 레이더까지 올라가 중국매미가 배에 없음을 확인했지만 아직 검역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배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서류에 기재된 사항이 틀림없는지 확인했다. 저장창고에 있는 식품의 원산지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싹이 튼 곡식은 없는지, 수북이 쌓인 먼지더미를 헤집어 벌레가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취사장 위생이나 오폐수 관리까지, 마치 검역이 아닌 검열을 받는 느낌이었다. 이전 기항지 검역 때 놓친 사항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혹시나 입항을 거부당하는 건 아닐까. 꼬박 16일을 걸쳐 뉴질랜드로 건너왔는데, 장교 한 명의 과오로 뱃머리를 돌리는 일은 정말이지 상상하기 싫었다.

 

다행히도 검역관은 큼직한 도장이 찍힌 검역확인서를 내주었다. 그가 말했다. “다소 까다로워 보일 수 있지만 검역은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내 나라의 자연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돼요. 아마 호주 검역은 더 까다로울 테니 미리미리 준비하세요.” 스스로 자국의 자연을 지키다. 나는 그동안 검역을 그저 아무 탈 없이 해결해야할 일로만 여기고  있었. 우리 배로부터 유입된 질병이나 동식물이 해당 국가의 자연을 얼마나 훼손할 수 있는지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건강한 자연 생태계가 존립해야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건강해 질 수 있음을 생각지 못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 국가의 검역규정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호주 검역은 이전 기항지에서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규정 하나하나가 문서상의 절차로만 남지 않고 검역관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일부 승조원은 지나친 게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환경에 있어서는 이상하리만큼 관대한 우리에게 검역관의 모습이 무척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연, 아니 생명을 대함에 있어 집행자의 이러한 실천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 터, 어느새 나의 당혹감은 부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산섬인 랑기토토 섬은 그 모습이 제주도와 매우 비슷하다.

한가로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는 '띠리띠리 마탕기'를 제외한 뉴질랜드 섬들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 아름다운 섬의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숲의 녹음이 한데 어우러져 어느새 나를 녹여버렸다.

'도둑을 조심하세요!' 이 안내판은 겉으로는 타카헤(Takahe)란 새의 도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새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길들여지면 야생의 본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띠리띠리 마탕기 곳곳에는 새들의 정착과 방문객 교육을 위한 여러 구조물이 설치돼 있었다. 나무 뚜껑을 열면 나뭇가지들이 들어 있는 인공 둥지가 있어 리틀블루펭권(Little Blue Penguin)이 이곳에 알을 낳아 부화시킨다.

둥지에 수북이 쌓인 나뭇가지로 미루어 보아 얼마 전까지 스티치버드(Stitchbird) 가족이 이곳에 머문 듯하다. 그날 만난 스티치버드 중에 이곳에서 태어난 녀석도 있을까?

벌처럼 꿀을 먹고 사는 허니이터(Honeyeater)과 새들을 위한 꿀물이 들어있는 구조물이다. 아직 꽃이 만발하기 전이라 그런지 이곳은 꿀물을 찾는 새들로 북적였다.

정착지를 떠나지않는 강한 습성 때문에 그 수가 나날이 줄고 있는 라이플맨(Rifleman). 띠리띠리 마탕기에서는 이 새의 보전에 특히 힘쓰고 있다. 다리의 표식은 개체 하나하나가 철저히 관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들의 성지 뉴질랜드의 '띠리띠리 마탕기'

뉴질랜드 입항 셋째 날, 나는 홀로 페리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새들의 성지라 불리는 띠리띠리 마탕기, 마오리어로 바람에 살랑이다란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오클랜드 북동쪽의 작은 섬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 섬을 자연보전구역으로 지정, 1984년부터 세계야생동물기금의 지원을 받아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사이 30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심어졌는데, 특히 외래종의 유입을 철저히 막은 덕에 울창했던 원시림은 옛 모습을 빠른 시일 내에 되찾았고 떠났던 새들도 자연스레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 티리티리 마탕기에는 78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가히 새들의 성지라 불릴 만 했다.

 

띠리띠리 마탕기에 함께 가자며 군의관 형들을 졸랐으나 다들 “16일 만에 육지를 밟았는데 배를 또 타자고!?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힘들겠다, 연중아.”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나도 다시 배를 타기는 싫었기 때문에 전날 밤만 해도 그곳에 꼭 가야하나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새들의 성지라는 감히 얻기 힘든 별칭, 그리고 띠리띠리 마탕기란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이름의 마력에 굴복해 버렸다.

 

함께 섬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나처럼 젊은 또래에게 자연은 큰 관심이 되지 못 하는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지난 105일의 여정 동안 수백 명의 젊은 승조원 중 자연을 찾아 나선 이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야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까. 아니면 메마른 도심에서 성장한 우리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자연을 생각하는 법을 모르게 된 걸까.' 나는 돌연 씁쓸해졌다.

 

섬에 도착하자 자원봉사자에 의한 교육이 이뤄졌다. 섬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자원봉사자와 이를 듣는 방문객 모두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하루에 이 섬을 방문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오클랜드에서 이곳을 오가는 페리 또한 하루에 한 편뿐이라 섬에 상주하는 자원봉사자를 제외한 모두가 오후에 돌아가는 페리를 꼭 타야만 한다. 자원봉사자는 만약 이를 놓치면 수상택시라도 불러 섬을 떠나야 한다며 시간을 엄수할 것을 연신 강조했다.

 

모든 설명을 마친 자원봉사자는 , 빨리 섬을 보고 싶으시죠? 이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절차만 남았습니다. 이 섬의 생태계는 사실 자연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오늘의 띠리띠리 마탕기를 만들었지요.”라고 말하며 방문객의 가방과 신발 밑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혹시 생태계를 해칠 수 있는 쥐나 벌레 같은 동식물이 없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 이곳에서도 검역이 이뤄지는구나.’ 이틀 전 뉴질랜드 검역이 바로 떠올랐다. 한 나라 안에서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을 대상으로 또 하나의 검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자연을 보전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자연과 함께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단 말인가.' 검사를 끝내고 섬에 첫 발을 내딛는 발걸음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띠리띠리 마탕기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딜 가나 각양각색의 새 소리와 울창한 원시림, 푸른 바다가 나를 에워쌌다. 살랑대는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눈앞에 나타난 한 마리 새를 카메라에 담을 때 일이다. ‘찰칵! 찰칵찰칵!’ 녀석은 그만 셔터소리에 숲으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여성이 나를 나무랐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면 어떻게 해요! 어린아이도 안 그러는데그 여성의 손에는 큼직한 망원경이 들려 있었다. 나는 멀리서 새를 관찰하고 있던 그 여성을 방해한 거였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 새처럼 숲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이 섬을 방문한 사람들의 손에는 카메라만큼이나 망원경이 많이 들려 있었다. 카메라나 망원경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는 동물, 아니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큰 연관이 있었다.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피기에는 아무래도 카메라보다 망원경이 훨씬 적합하다. 띠리띠리 마탕기를 방문한 사람들의 의식은 이곳을 보전하려는 자원봉사자들 못지않게 성숙했던 것이다.

 

오후 3. 나는 간신히 돌아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다음 날 오클랜드를 출항한 우리 배는 호주 시드니에서 4일을 보냈다. 비록 8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뉴질랜드와 호주의 자연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혹자는 이 두 나라는 역사가 짧고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어 지금의 모습을 가능하다고 했는데, 처음 나는 그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아무리 여건이 좋아도 자연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기항지인 파푸아뉴기니에서 이 생각은 크게 흔들렸다.

 

'개와 함께 여행하는 승객을 위한 자리입니다.' 호주의 한 페리에서 본 문구다. 태평양을 돌며 느낀 한 가지는 반려동물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시민의 권리일 수 있다는 거였다. 

뉴질랜드 공원에서 만난 수탉이다. 이곳 공원에서 닭들은 먹기 위해 키워지는 게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서 자생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 도심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도마뱀은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어릴 적 개천에서 각종 곤충과 개구리, 도마뱀 등을 잡곤 했는데(그래서인지), 오늘날 이들은 주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띠리띠리 마탕기 섬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는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새를 만날 수 있다. 시드니 왕립식물원 표지판 위에서 찌르레기 한 마리가 연신 모래를 부르고 있다.

앵무새 떼가 도심에? 놀랍게도 시드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좁은 새장에 갇혀 사는 앵무새만 봐서인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마지막 에덴동산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르즈비 입항을 하루 앞둔 2012125, 승조원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의료봉사와 공식행사를 제외한 어떠한 상륙도 할 수 없다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에 이은 두 번째 상륙금지. 불안한 치안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마약으로 인한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인 콜롬비아에서와 달리 대부분의 승조원은 이번 명령을 쉬이 납득하지 못했다.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파푸아뉴기니에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를 낙담시켰다. 현지 상황을 대사관으로부터 전해들을 수밖에 없는 지휘부도 꼭 금지명령을 내려야만 하나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승조원들 사이에는 지레 겁먹은 거 아니야?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겠어.” “자유여행은 아니더라도 단체여행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나 또한 다른 나라에서처럼 자유롭게 동물을 찾아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맥이 풀린 터였다. 그나마 의료봉사를 빌미로 잠깐이나마 바깥구경을 할 수 있어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는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하루쯤은 상륙이 허락되지 않을까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콜롬비아에서도 이튿날 단체 정글투어가 이뤄진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배는 지구 마지막 에덴동산, 파푸아뉴기니에 입항했다.

 

입항 첫날, 한 소년이 환영행사 도중 쓰러졌다. 지난 사흘 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단다. 수액을 맞고 기력을 회복한 그에게 우리는 우유와 초코파이를 건넸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음식. 그는 한참 주위를 살핀 후에야 조심스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주저하는 그를 보고 한 군의관이 말했다. ‘녀석은 지금 이곳에 오지 못한 가족 생각이 가득할거야. 혼자 먹기 미안해서.’ 의무실에는 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그는 병상에 누운 채 설사를 했다. 소년에게 우유는 살아가며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끄러울 법도 한데 그에게는 아이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선교사 손을 맞잡고 배를 떠나는 순간까지 아이는 끝내 웃지 않았다. 나는 소년의 표정에서 파푸아뉴기니가 우리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곳임을 직감했다.

 

이튿날 의료팀은 의료봉사가 이뤄질 까리타스 수녀원으로 향했다. 함께 동승한 대사관 직원이 전한 파푸아뉴기니 의료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국민 대부분은 평생 의료기관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결핵과 말라리아, 에이즈로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포트모르즈비 건물과 건물에는 세계 에이즈의 날을 상징하는 큼직한 빨간 리본이 걸려있었다. 에이즈 보균율 10%, 아직까지 일부 지역에서 에이즈 환자를 산채로 매장하는 풍토가 남아있는 이곳에서 빨간 리본은 에이즈 예방의 희망보다 현실의 참혹함과 절박함의 표상이었다.

 

인근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온 의사가 운영하는 사설병원은 터무니없게 비싸 이용할 엄두조차 못 낸다고 한다.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려면 일 년치 월급을 꼬박 모아도 턱없이 부족하다니 말이다. 중환자를 치료할 의료기관도 전무한 실정, 매일 아침 호주 캔버라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뜨지만 15명의 환자선발은 질환의 위중함과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새벽부터 줄을 서더라도, 당장 수술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더라도 돈 있는 자의 입김에 밀려 며칠이고 뒤로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하여 의료봉사 당일에만 600명이 넘는 환자가 수녀원을 찾았다.

 

천혜의 자연은 자연스레 부족과 부족의 단절을 가져와 700여 민족과 언어를 탄생시켰다. 인류학자라면 파푸아뉴기니에서 한 번쯤 연구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과 원시성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 호주의 식민지배와 이후 부패정권의 수립으로 인해 괴기하게 변질되어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범죄가 창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병마와 굶주림, 범죄로 고통 받고 있지만 극소수 상류층의 생활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우리 배 맞은편 언덕에 들어선 집 한 달 월세가 수백수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빈부격차를 감히 짐작조차하기 힘들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파푸아뉴기니 국민의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마약에 절어 산다는 것이다. 환각성분이 들어있는 부아이라는 열매는 이곳에서 담배보다 더 인기가 많다. 씹으면 흘러나오는 빨간 액체에 입 안은 온통 시뻘겋게 착색되는데, 비극적이게도 이를 보고 일반국민과 상류층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한때 지상낙원이었던 파푸아뉴기니는 오늘날 생과 사가 하루하루 결정되는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불과 얼마 안 떨어진 두 나라의 극명한 대비에 놀랐고, 호주의 만행에 화가 났다. 범죄가 극렬한 파푸아뉴기니지만 호주인 만큼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식민지 시절 호주인의 잔혹함이 이곳 사람들의 뇌리 깊숙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참담한 파푸아뉴기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서구인은 거의 모든 자연을 대상으로 도륙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 중에는 동물은 물론 원주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주 동남쪽에 위치한 태즈매니아 섬에서는 태즈매니아 원주민과 태즈매니아 타이거라는 동물이 76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절멸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전쟁과는 분명 다른 성격을 지녔다. 서구인에게 원주민과 타이거는 그저 개척의 방해꾼이자 희귀한 동물로 보였던 것이다. 파푸아뉴기니를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선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20121228일 우리 배는 105일의 여정을 모두 마치고 모항 진해로 돌아왔다. 이전까지 나는 우리는 인간 이외의 존재를 위할 때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어느덧 3개월이 지난 오늘,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동물은 물론 같은 인간도 차별하고 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아름다움 뒤에는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여전히 빈부와 성 등 각종 차별로 시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물이 처한 환경이 바뀌길 바라는 건 과연 오만일. 동물이란 생명의 다른 이름의 모습들이 어떠한지, 또한 그들과 우리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일지 세상을 보고 돌아왔을 때 알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막막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래서 더 혼란스럽지만, 이 막막함과 혼란스러움이 다시 길을 만들어주리라는 희망은 더욱 또렷해졌다.

 

 

맨발의 아이들과 앙상하게 뼈만 남은 새끼 강아지에게서 파푸아뉴기니의 오늘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함박웃음은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하루빨리 이곳의 질병과 배고픔이 사라지길 바란다.

까리타스 수녀원에서 파푸아뉴기니 가족과 함께. 

의료봉사를 받기 위해 까리타스 수녀원을 방문한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파푸아뉴기니는 극심한 범죄 때문에 해외구호활동이 전무한 실정이라 우리가 방문했던 날의 의료봉사는 현지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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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수의사 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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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22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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