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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림동 다섯 강아지 경상북도 포항시 청림동은 대규모 제철·화학공단과 해병대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은 제게 공단으로부터 하염없이 피어오르는 매연과 군대라는 조직의 삭막함에 억눌린 인상을 줍니다. 말 그대로 메마른 이곳에서는 시골마을의 아기자기함도, 도시의 화려함도 찾아볼 수 없지요. 포항은 아직도 제게 낯설어요. 지난 2년을 보낸 진해가 항상 그리웠고 주말이면 서울로 도피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내달이면 포항을 떠납니다. 단기복무를 하는 군인이라면 누구나 하루라도 빨리 전역 날을 기다릴 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군 생활의 마지막이 될 포항, 그 중에서 특히 청림동을 그냥 이렇게 떠나면 안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일까. 저는 요즘 무작정 청림동 길을 걷습니다. 여느 때처럼 의시적으로 길을 걷던 .. 더보기
개와 우리 사이. 개를 먹는다는 것 배는 어느덧 일본해협을 지나 태평양에 접어들었다. 해협 양 옆으로 펼쳐진 섬들은 정말이지 끝없이 이어졌는데, 나는 함미 갑판에서 이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일본이 크긴 큰 나라구나’라며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섬들도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지만 바다 새 몇 마리는 여전히 주위를 빙빙 돌며 우리가 아직 대양에 들어서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이제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는 꼬박 13일을 가야한다. 진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해협까지 다시 이틀이 걸렸는데, 앞으로 13일을 더 가야 한다니.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준비해 온 책을 모두 읽고도 남을 시간일 수도, 아니면 두어 권의 책을 읽기에도 턱없이 부족할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잠시 이번 여정을 시작하기 얼마.. 더보기
태평양에서 전하는 반려동물을 향한 단상 항해 11일째. 우리 배는 예정된 항로에서 발달 중인 불안정한 저기압 대를 피해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항해나 작전 관련 병과가 아닌 나로선 이러한 정보를 귀동냥으로 알 수밖에 없는데, 오늘은 우연찮게 기상현황판의 위성사진을 보고 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위성사진에서 우리 배의 위치뿐만 아니라 한 가지 흥미로운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미드웨이Midway. 미드웨이 해전이 일어났던 그 곳을 지나가다니, 기분이 묘했다. 오늘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인간과 개,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동물이 어떠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특히 극도로 도시화된 환경에서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려 한다. 이는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지극히 예민한 주제인데,.. 더보기
죽음 - 숨겨진 풍경을 읽고 일본인 신문기자 후쿠오카 켄세이의 「숨겨진 풍경」을 읽었습니다. 숨겨진 풍경이라. 제목만 언뜻 보면 사람들에게 미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서적 같지만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풍경은 달갑지 않은 죽음의 현장을 말합니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죽음이 바로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신념 아래 죽음을 가까이서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며, 이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다고 역설하지요. 여기서 수많은 죽음은 비단 사람의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총 3부에 걸쳐 우리 주변에 교묘히 숨겨진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바로 내몰린 개고양이의 죽음, 우리가 먹는 가축의 죽음, 유서를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죽음을 말이지요. 이 중 앞의 2부를 잠시 살.. 더보기
태즈매니아 잔혹사, 인간과 동물의 절멸 그들은 태즈매니아 섬의 습하고 서늘한 기후 속에서 10,000여년 동안 고유의 역사를 간직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탐험가들의 전언과 사진에 불과하다. “그들은 적갈색 피부와 곱슬머리를 한 키 작은 사냥꾼이자 채집자였으며,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기질을 지녔다.” 1643년 11월 24일, 태즈매니아 섬을 처음으로 서구 문명에 소개한 네덜란드 탐험가 Abel Tasman은 위와 같이 원주민의 모습을 전했다. 아마도 이 전언을 그려본다면 위 그림과 같으리라.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태즈매니아 원주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바로 지구상에서 그 어떤 생명보다도 빠르게 절멸되었기 때문에. 태즈매니아 섬은 호주대륙에서 남동쪽으로 약 2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본래 호주대륙의 .. 더보기